오늘은 562돌 한글날이다. 지난 1443년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500여년간 우리 민족과 함께한 한글은 어느 나라 말과 문자보다 우수하고 과학적이다. 소설 대지를 쓴 작가 펄 벅은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극찬한 바 있으며 유네스코도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높이 평가해 지난 1997년 한글을 세계기록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
이후 매년 10월 9일에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세종대왕상을 수여하고 있다. 자모음의 배열과 음이 매우 규칙적인 한글은 정보화와도 잘 어울린다. 즉, 영어의 알파벳은 한 단어가 여러 소리가 날 수 있지만 한글은 각 자모음이 하나의 소리를 내기 때문에 정보화, 혹은 데이터화가 그만큼 쉽고 편리하다. 이뿐 아니라 모음과 자음 24개의 글자로 거의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어 이를 정보통신기기에 잘 활용하면 상당한 비교우위를 낼 수 있다.
바로 한글 세계화와 맞물려 한글 정보화를 주목하는 이유다. 한글정보화는 국내 정보산업 발전에도 매우 긴요하다. 검색이나 시맨틱웹, 텍스트마이닝 같은 언어정보와 밀접한 관련 있는 산업은 국어정보화가 제대로 돼 있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계화를 비롯해 동시번역, 음성지원 같은 정보기술을 활용해 한글을 디지털 정보로 만드는 것부터 이를 활용한 사전 및 검색 등을 포괄하는 한글정보화는 개념이 매우 방대하다. 이 때문에 일개 기업이 나서기 어렵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의 한글 및 국어 정보화 수준은 만족스러운 편이 아니다.
지난 1998년 정부가 1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10년 계획으로 추진한 국어정보화 프로젝트 ‘세종계획’이 절반의 성공에 그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전자사전 개발을 비롯해 한민족 언어 정보화, 전문용어 정비, 문자코드 표준화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행됐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관련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언어정보화 관련 업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일부는 중간에서 발을 빼는 등 기술과 산업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년에 시작하는 2차 세종계획은 산업과 시장 논리에 더욱 충실해야 할 것이다. 한글정보화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통일시대에 대비한 남북한 정보화 관련 언어 통일이다.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기술 및 정보화 용어의 남북 이질화가 심화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은 어느 분야보다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용어가 많은데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남북 간 이질적 기술용어는 통일 이후 남북 정보화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오래전부터 남북 컴퓨터 자판 통일 등을 일각에서 추진해왔지만 더욱 광범위한 남북한 정보화 표준 및 통일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일부 소프트웨어업체를 비롯해 여러 IT업체들이 디지털 세상에 한글 혼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말과 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문화까지 담겨 있기 때문에 한글정보화는 우리 IT산업의 세계화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자국에서 개발한 한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이자 세계가 알아주는 IT강국이다. 우리가 지닌 IT를 활용해 한글 및 국어정보화를 한 단계 높이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