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일본이 노벨상 쾌거로 들썩이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3명, 화학상 1명 등 벌써 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로써 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6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특히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대목은 그 분포도다. 일본인 수상자 가운데 물리학상이 7명, 화학상이 5명으로 과학기술 분야 인물들이 압도적이다. 과학 기술의 수준과 역량 면에서 ‘과학 일본’의 힘을 보여준다. 평화상(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아직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 일본의 사례는 부러움과 찬사를 넘어 철저한 자기 반성과 대책 마련이라는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일본은 장기적이고 꾸준한 지원 정책과 연구개발 인력 우대 풍토 탓이라고 자체 분석한다. 일본은 지난 1910년대부터 이화학연구소 등에서 이론 물리학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이 시발점이었고 이후 스타 과학자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까지 병행했다. 집념과 열정으로 연구에 몰두해 훌륭한 성과를 거둔 과학자들은 자연히 젊은이들을 자극했고 이들은 앞다퉈 이공계 과학자를 지망했다. 인력 분야의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 역시 물심양면의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은 지난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기점으로 당시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과학연구 예산을 늘려갔다. 2001년에는 ‘향후 50년 내에 노벨상 수상자 30명 정도를 배출한다’는 야심찬 5개년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이 목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자 수는 곧 그 나라의 국력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부터는 ‘세계 최고수준 연구거점 프로젝트’를 밀어붙여 도쿄대, 교토대 등 5개 거점을 정하고 5억∼20억엔을 최장 15년간 투자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이처럼 탄탄한 기초, 즉 과학기술 경쟁력이 밑거름이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과학기술 강국의 상징적 부처였던 과학기술부는 아예 공중분해됐다. 외국에서는 너무도 흔한 이공계 출신 장관이 한 명도 없는 ‘멋진 내각’을 갖고 있다. 기초 연구보다는 당장의 먹거리에 치중하는 응용연구에 역량을 집중한다. 이공계 기피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됐지만 정작 정부는 먼 산만 바라볼 뿐이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사회적 홀대 속에 꿈을 잃어가고 있다. 스타 과학자 프로젝트 역시 황우석 사태 이후 쑥 들어갔다. 서울대 공대에 입학해서도 줄줄이 자퇴, 의대·법대에 재도전하는 학생이 일반화됐다.
국정감사 자료에서는 더욱 심각한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과학기술연구기관의 석·박사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한 달 임금은 평균 200만원 남짓이다. 연구개발은 안정적인 고용과 지원이 필수임에도 이런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올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12조원이 좀 넘는다. 지난해 대비 10% 이상이 늘어난 금액이다. 7대 과학기술강국을 지향하면서 GDP 대비 5%를 연구개발에 투입한다는 청사진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절대 규모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민간이 하지 못하는 장기적이고 기초적인 연구를 기꺼이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의지를 갖고 백년대계를 세워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것 또한 정부의 할 일이다. 정부는 부동산과 건설에 쏟는 정성의 10%만이라도 과학기술에 눈을 돌려라. 우리는 언제까지 일본을 부러워해야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