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간 통신시장 규제권한 다툼의 골이 깊어졌다. 서로 고유 권한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평행선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이다.
13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중재자(법령개선 TFT)로 나선 법제처는 최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제재한 동일한 행위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정조치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 개정을 제안했다.<본지 9월 17일자 1면 참조>
법제처는 이를 위해 전기통신사업법 제37조의3 ‘(이 법으로 제재를 받은) 통신사업자의 동일한 행위에 동일한 사유로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에서 ‘동일한 사유’를 삭제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공정위가 동일한 행위에 ‘다른 사유’로 제재해온 전례를 감안한 제안이다.
방통위와 공정위가 통신사업자를 제재할 때 각각 ‘사후 통보’하도록 전기통신사업법과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다만, 두 기관이 제재 전 처리절차로서 양해각서(MOU)와 같은 협의체를 구성해 특정 문제를 조사·제재할 주체를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방통위와 공정위는 이 같은 법제처 대안에 시큰둥하다. 특히 “전기통신사업법이 정한 금지행위 가운데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유형에 대해서만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자”는 공정위 주장에 “공정거래법상 금지행위 유형을 포괄하는 통신시장 규제의 특수성·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방통위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두 기관이 제재한 내용을 사후 통보하도록 한 중재안도 모호하다.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에 ‘계열사 부당 지원’과 같은 일반 불공정 행위가 포함되지 않은 상태지만 시장에서는 결합상품과 같은 계열회사 간 묶음 판매가 활성화해 법령 선·후는 물론이고 개별 규제 여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신 관련 법률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전기통신사업법상의 모호한 규정으로부터 이견과 충돌이 빚어진다”면서 “기관별로 자기 권한사항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양보를 종용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중복규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용기자 eylee@
<표>방통위(옛 통신위)와 공정위가 동일한 행위를 중복 조사한 사례
◎ 1998년 이동통신 3사의 가입비 면제를 통한 가입자 유치행위에 대해 옛 통신위는 ‘부당한 이용자 차별’로, 공정위는 ‘부당 고객유인행위’로 각각 시정명령
◎ KT가 비영업직 직원에게 KT PCS 영업을 시킨 행위에 대해 공정위는 2002년 ‘거래강제(사원판매)’로, 옛 통신위는 2004년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 이익저해’로 각각 시정명령
◎ 2004년 번호이동성 제도 시행 초기에 이동통신 3사의 약정할인요금 광고를 옛 통신위와 공정위가 동시에 조사
◎ 2005년 이동통신 3사 무선인터넷 망 개방에 대해 옛 통신위가 조사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따로 조사
◎ 2006년 LG텔레콤의 ‘기분존 요금제’에 대해 옛 통신위는 요금제에 가입하지 않은 고객을 ‘부당하게 차별한다’는 이유로 시정을 명했으나, 공정위는 ‘부당염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