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 비중 확대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에 찬성과 반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원전 건설 같은 국가 중대사에 장점과 단점을 짚어보는 논쟁은 필수적이고 건설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찬성이든 반대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주장인지, 어떤 선택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보고 필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원전 비중 확대에 반대하는 논리적 근거는 두 세 가지로 모을 수 있다. 전력 생산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5% 미만으로 미미한데 고유가를 빌미로 원전 확대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 그중 하나다. 원자력이 전력 공급에는 기여하지만 갈수록 비중이 늘어나는 수송 에너지 분야까지 감당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더해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원자력의 ‘원죄’로 치부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 확대에 반대하는 이 같은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원자력의 근본적인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 원자력은 새롭고 강한 에너지를 찾으려 애써온 인류가 20세기에 들어서야 발견한 ‘마지막’ 에너지다. 약간의 정련 또는 정제 과정만 거치면 사용할 수 있는 화석 에너지와 달리 원자력은 고도의 기술과 장치로만 구현할 수 있는 기술집약적 에너지다. 원자력을 두려워하고 반대하는 이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원자력의 고정된 이미지와 달리, 원자력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지금 이 순간도 생물처럼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20개 원자력발전소에는 방사성폐기물 중에서도 독성이 가장 심한 사용후핵연료가 9000톤 넘게 보관돼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발전 과정에서 연소하지 않은 우라늄 등 유효한 성분이 상당량 포함돼 있는 또 다른 에너지원이다. 이에 착안해 세계 각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해서 새로운 원자로의 원료로 사용하려는 연구를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는 10여년 전부터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연구에 발벗고 나선 덕에 이 분야에서 미국도 부러워할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실용화를 위해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원자력이 수송 에너지를 전혀 분담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언제까지 참 명제는 아닐 것이다. 전 세계가 화석연료 의존을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있는 수소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전혀 발생하지 않지만, 물을 분해하는 데 에너지가 소모돼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물 분해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 양보다 많은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 초고온가스로라는 새로운 원자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을 포함한 국내외 연구진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0년대 중반쯤이면 원자력으로 만든 수소를 채운 자동차가 거리를 달리게 될 것이다.
끝으로 전력 생산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데 고유가를 이유로 원자력 확대를 꾀한다는 비난은 부당하다. 석탄(36 %), 천연가스(14 %)를 포함해서 화석연료가 우리나라 전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원자력(43 %)을 웃도는 상황인데, 석유 대체재인 석탄과 천연가스의 값은 석유값 폭등에 덩달아 뛰어오르고 있다.
원자력만이 능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꾸준히 투자하고, 비현실적으로 저렴한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서 전기 낭비를 막는 등 세계 9위의 에너지 소비국이 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20세기 원자력이 아닌 21세기 원자력의 정당한 평가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장 msyang1@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