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제지표가 14일 그동안의 먹구름을 걷고 오랜만에 긍정적 신호를 보였다. 미국과 유럽의 무제한 달러 공급 발표 이후 악화 일로를 걷던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반등세를 보였고 주식·외환 등 국내 금융시장도 급속히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이 언제 극복될지 알 수 없고 또 신용경색이 실물로 파급되는 데 따른 경기침체의 깊이와 기간은 안개 속이다. 이 때문에 기업 경영은 여전히 살얼음판 위를 걷는 형국이다.
삼성전자·LG전자·하이닉스반도체 등 주요 전자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어제 열린 한국전자전 개막식에서 내년 시장 상황과 투자 전망을 하나같이 어렵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실물경기 침체로 메모리반도체 경기가 내년 상반기까지 어려울 것이라면서 “내년 하반기나 돼야 시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했으며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도 메모리반도체의 공급상황이 개선되고 있으나 시장수요가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다면서 “예년처럼 하반기 성수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영하 LG전자 DA사업본부 사장은 가전제품 수출에 “미국 시장 규모가 금융위기 때문에 5∼10% 축소돼 영향이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으며 이상완 삼성전자 LCD총괄 사장은 “LCD 시황이 내년 1분기까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 제품의 주요 사령탑들이 일제히 부정적 경기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사실 현재의 국내외 경제 상황을 보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가 진정세를 보인 어제만 해도 국내외에서 부정적 경기전망이 잇따랐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내년 전 세계 주요 기업의 IT 부문 지출이 올해보다 2.3% 상승하는 데 그칠 것이라면서 올 초 예상했던 것보다 수치를 배 이상 줄였다. 또 정부가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실질 기준 4.8∼5.2%로 전망했는데도 민간연구소 등은 실제 3%대에 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LG경제연구원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 4.4%에서 3.6%로 급락할 것이라고 했으며 한국경제연구원도 3.8%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IMF도 지난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3.5%로 제시, 지난 6월 전망한 4.3%보다 0.8%포인트 낮췄으며 골드만삭스 역시 기존 4.6%에서 3.9%로 내렸다.
이처럼 국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그나마 이상완 사장이 어제 “올해 계획된 7조원 투자는 모두 예정대로 집행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다행이다. 국내 경기 활성화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업체가 세계시장 1,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는 최근 2년 가까이 지속한 가격 급락으로 삼성전자를 제외한 업계 전체가 적자를 내고 있다. 또 지난 상반기까지 1년여에 걸친 대대적 호황을 누린 LCD 산업도 하반기 들어 세계 경기 침체 여파로 제조사들이 감산에 나서면서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골이 깊으면 등성이도 높은 법이다. 따지고 보면 삼성·LG전자가 현재의 글로벌 기업이 된 것도 어려울 때 잘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어려움이 위기가 아닌 기회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