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우는 `미디어 황제`

빚더미에 우는 `미디어 황제`

 뉴스코프 루퍼드 머독 회장과 함께 미디어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섬너 레드스톤 비아콤 및 CBS 회장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일생을 바쳐 확보한 비아콤 그룹과 CBS 그룹의 독보적인 경영권이 자칫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15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85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체 미디어 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6억달러 빚보증, 흔들리는 미디어 황제= 내셔널어뮤즈먼트는 13일(미국 현지시각) 비아콤과 CBS 지분 2억3300만달러어치를 매각했다고 밝혔다. 내셔널어뮤즈먼트는 레드스톤 일가가 소유한 업체로 레드스톤이 거느린 미디어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매각 이유는 극장 체인 사업 등에 투자하기 위해 빌린 16억달러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아콤과 CBS 주가가 급락하면서 이 지분을 담보로 빌린 것으로 알려진 대출금 조건에 변동이 생긴 것이다. 비아콤은 올 들어 51%, CBS는 67% 떨어졌다.

지난 주말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회사 중역들은 대출 계약을 충족시키기 위해 비아콤과 CBS 지분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내셔널어뮤즈먼트 측과 금융기관, 자산 평가자 사이의 마라톤 협상이 시작됐다. 레드스톤 회장에게 금쪽같은 지분 처분결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 내셔널어뮤즈먼트 측이 매도해야 하는 주식은 4억 달러 규모였으나, 양측의 협상 끝에 2억3300만달러 수준으로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레드스톤 회장은 13일 미국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는 역설적으로 레드스톤 회장이 시장 상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촉각 곤두세운 금융 기관= 당연히 레드스톤 회장은 의결권이 없는 주식만 골라 팔았다. 그러나 비아콤과 CBS의 주식이 지난주 금요일 수준으로까지 또 떨어진다면 그는 추가로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금융 기관들은 레드스톤 회장이 더 많은 현금이 필요한지 알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버클레이스캐피털 앤서니 디클러멘트 애널리스트는 “만약 내셔널어뮤즈먼트가 의결권이 있는 주식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온다면 CBS와 비아콤도 (운명의) 무대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내셔널어뮤즈먼트 측이 보유한 비아콤과 CBS의 비의결권 주식은 5억4000만달러 가량, 의결권 주식은 14억달러 수준이다.

◇“결국, 후계 문제”= 뉴욕타임스는 이 문제가 결국 ‘미디어 제국’의 후계구도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회사 경영을 놓고 아버지 레드스톤과 딸 사리 레드스톤이 또 한번 공개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딸 레드스톤은 ‘문제의’ 극장 체인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아버지 레드스톤과 딸 레드스톤은 이미 경영권 문제로 큰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딸 레드스톤은 비아콤과 CBS의 최대 주주와 의장 자리를 물려받기를 원하지만, 레드스톤 회장은 지난해 중순 “딸이 나를 계승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딸이 보유한 내셔널어뮤즈먼트 지분 20%를 매입하는 협상을 벌였다는 소식도 흘러나왔다.

내셔널어뮤즈먼트 측은 극장 체인 관련 대출 때문에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알려지자,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주식 매각은 시장 상황에 따른 것이고 기업 경영 상황과는 관련없다고 주장했다.

류현정기자 dreamshot@



 ◆ 섬너 레드스톤(Sumner Redstone)은= CBS 그룹, 파라마운트 영화사, MTV 네트웍스, 비아콤 등 미국을 대표하는 미디어의 실질적인 소유주이자 대표 회장. 1923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31세에 잘나가는 변호사 업을 접고 아버지의 지역 자동차 극장 사업을 물려 받는다. 반독점 소송을 벌여 자동차 극장도 개봉작을 상영할 수 있는 길을 연 그는 회사 이름을 내셔널어뮤즈먼츠(National Amusements)로 바꾸고 오늘날 멀티플렉스의 효시인 전국 극장 체인 사업에 나섰다. 87년에는 MTV, 쇼타임, 니켈로디언 등 소유한 케이블 네트워크 기업 비아콤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5대 영화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세계 최대의 비디오 체인점 블록버스터 등 끝없는 기업 인수합병을 이어간다. 99년 미국 3대 지상파 중 하나인 CBS를 인수, 일생 최대의 합병을 성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