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 LG전자 CFO’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거침없고 소신이 뚜렷하다. 윗사람에 대한 직언도 과감하다. 매사에 자신만만이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파트너를 대하는 친화력도 만만치 않다. 덕분에 그는 대외적으로 기업 CFO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언론과는 IR 자리에서만 부닥쳤지만 명쾌했다. 부진한 사업부문에는 “자체적으로 무엇이 부족했다” “이를 어떤 방향으로 보완할 계획”이라는 자아반성도 서슴지 않았다. 사업부별 세부내용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지 못하면 불가능한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했다. 숫자나 나열하면서 시장 탓, 업황 탓 하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보수적이고, 무언가 숨기는 듯하던 기존 CFO의 선입견에서 한참 벗어났다. CEO의 눈과 귀, 참모일 뿐 아니라 견제자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적극적, 현대적 CFO’의 그림이었다.
그에게 LG디스플레이 CEO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최악의 시장환경 속에 1조원이 넘는 적자기업 사령탑으로 갔다. 재무통이라는 딱지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등식화됐다. 가장 손쉬운 탈출구는 사람 자르고 조직 줄이는 것이다. 퍼스낼리티 역시 그런 쪽의 추진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일에는 ‘철저’ ‘깐깐’이 트레이드 마크요, 부하들이 가장 어려워 한다는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갔다. ‘배려’를 들고 나왔다. 사람 내몰고 조직 쥐어짜는 대신 임직원의 마음을 얻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모험에 가까운 어려운 길을 선택했지만 성공했다. 마침 업황 사이클도 호황기에 진입했다. 사상 최대 흑자기록을 이어갔고 현금 보유만 3조7000억원이 넘는다. 물론 비판론도 있다. 전임 CEO였던 구본준 부회장이 오너라는 신분이었기에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단행한 데 힘 입은 바 크다는 이른바 ‘복장론’이다.
이제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LCD 공급과잉과 실물경기 후퇴가 겹치면서 3분기 실적에 직격탄을 안겼다. 애널리스트들은 LCD 시장의 모멘텀 부재를 이유로 내년 2분기까지는 적자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일부 대만 경쟁사들은 벌써 적자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 역시 어려움을 인정한다. 그런데도 그는 그간의 축적된 실력을 가동하면 위기일수록 오히려 점유율과 시장 지배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권영수와 LG디스플레이’의 가장 획기적 변화는 중소 협력업체들과의 상생 프레임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기술에서 자금까지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동반 성장을 유도했다. 납품단가 올려주고 현금 결제하는 것은 ‘상식의 반란’이지만 ‘마음’을 얻으면서 ‘열정’은 따라오고 한국 LCD산업의 최강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실적은 시어머니도 모른다. 업계는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사생결단의 치킨게임을 벌일 것이다. 체력적으로 준비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공정혁신에 원가절감은 기초체력에 해당한다. 전략지역 중국 시장은 파나소닉(마쓰시타)을 끌어 들이고 하이얼, 창홍 등 내로라하는 현지업체를 포용해 한판 승부에 나선다.
그러나 고통이 커질수록 유혹도 커질 것이다.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될 수도 있고 힘들게 가꿔온 중소 협력업체와의 상생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 비 올 때 우산 빼앗는 것이 비즈니스의 속성인지라 고통분담이라는 미명 하에 납품업체 단가 후려치고 비용 떠넘기는 ‘관례’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예고된 위기다. 권영수와 LG디스플레이의 경영철학이 상생을 바탕으로 ‘함께하는 위기 극복’의 멋진 선례를 남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택 논설실장 et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