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샌디스크 인수를 공개 제안한 지 한 달여 만에 이를 전격 철회했다. 삼성은 올 4월부터 샌디스크 인수를 위해 공을 들여왔는데 6개월 만에 인수할 뜻이 없다고 물러난 것이다. 이번 인수 불발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샌디스크가 대규모 적자 등으로 기업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데다 인수 가격을 놓고 양측이 워낙 시각 차이가 컸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폭등해 삼성의 재정 부담이 그만큼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일본 도시바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최근 샌디스크가 도시바와 공동 운영 중인 일본 공장 지분 15%를 도시바에 넘긴 것도 삼성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철회로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1위인 삼성은 낸드플래시 메모리 카드 1위 샌디스크와 합쳐 시장 지배력 확대와 생산 효율성 증가 같은 시너지 효과를 거두려 한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됐다. 낸드플래시 특허 기술 이용 대가로 샌디스크에 지급하고 있는 연간 수억달러의 로열티 비용절감도 불가능하게 됐다. 일부 외신과 증권가에서는 아직 삼성이 샌디스크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두고 볼 일이다. 그동안 우리가 삼성의 샌디스크 인수를 관심 있게 지켜본 것은 글로벌 인수합병(M&A)이 우리 기업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이미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 된 지 오래다. M&A는 이 시장을 공략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전략이다. 세계 IT업계 거목인 IBM을 비롯해 시스코·오라클·HP 등도 오래전부터 끊임없는 M&A로 규모를 키우고 핵심역량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 기업은 세계 M&A 회오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밝힌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전 세계 M&A 규모는 8800억달러였고 이 중 한국기업의 해외 M&A 비중은 0.1%에 불과했다. 미국, 유럽연합이 각각 기록한 20%, 48%와 너무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이번 인수는 이건희 회장 퇴임으로 오너가 부재한 상황에서 삼성이 과연 M&A 같은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하는 외부 우려를 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행보에 시선이 쏠렸다. 비록 인수가 성사되지 못했지만 일단 이 같은 우려가 기우였음을 보여준 것은 다행이다. 세계 유수 기업이 경쟁력 향상 일환으로 M&A를 택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우선 M&A는 필요한 고객, 제품, 서비스, 시장을 단숨에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다. 신규 투자에 따르는 여러 위험 요소를 완화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물론 이는 M&A가 성공했을 때 이야기다. 만약 실패하면 엄청난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성공적 M&A를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명확한 전략적 방향이 있어야 하며 회계, 자산은 물론이고 인력을 포함한 전방위적 실사가 필요하다. 인수 자체보다는 인수 후 통합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삼성이 지난 90년대 미국 PC업체 AST 인수에 실패한 것이나 주목받는 M&A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전략과 기획이 부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우량기업을 M&A하기에는 호황기보다 불황기가 훨씬 유리하다. M&A가 세계 경제 전쟁을 헤쳐나가는 유용한 무기로 떠오른 지금, 이제 우리 기업도 글로벌 M&A에 눈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