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발걸음이다. 발목에 납덩이 족쇄를 찬 채 모래밭을 힘겹게 내달리는 모습이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IPTV 상용화의 초읽기가 시작됐다. KT와 KBS, SBS가 지상파 재전송 협상에서 큰 틀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MBC가 남아 있지만 대세는 기울었다. 과제는 아직도 첩첩산중이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엄청난 진전이다. 특히 KT라는 기업의 뚝심과 역량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좌초했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말로만 신성장동력이었다. 법제화에만 1년여를 끌었다. 서비스 지역 제한에서부터 점유율 한정까지 씨줄과 날줄로 엮은 규제 그물을 쳤다. 방송의 공익성과 보편성을 담보하는 장치라도, 상업적으로는 기업의 창의성을 원천봉쇄하는 ‘과거형 접근법’이다. 덕분에 시장성을 둘러싼 회의론도 거셌다. 통신업계의 숙원으로 불렸지만 KT만이 몸이 달아 죽기살기로 뛰었다. 정부와 국회, 방송사, 케이블사업자에 이르는 ‘17 대 1의 뚝방 싸움(?)’을 펼친 셈이다. KT는 방송 쪽에서 보면 ‘거대 자본의 습격’이지만 통신 쪽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치는 상처투성이 ‘공룡’일 뿐이다. 어쩌면 KT의 절박함이 그나마 IPTV를 끌어온 추동력이었을 것이다.
첫발을 내디딘 IPTV다. 기왕이면 산업적 성공과 일자리 만들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시장 환경이다. 실물경제는 이미 최악의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사업 초기 연착륙 조건은 고객의 관심이다.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이 투입돼야 가능한 일이다. IMF 시절 이동전화가 성공한 것은 무차별적이고 전방위적인 마케팅에 힘입은 바 크다. 무려 5개의 사업자가 ‘실탄’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IPTV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자칫 KT의 모노드라마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SK브로드밴드와 LG데이콤은 서두를 이유가 별로 없다. 매출과 수익, 성장성을 IPTV에만 의존하는 구조도 아니다. KT의 시행착오를 지켜본 뒤, 돈을 태울지는 천천히 결정해도 된다. 장사도 전문집단상가를 이룬 곳에 손님이 꾀게 마련이다. KT로서는 선발주자의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독자적 수익원이 가능한 독립형 사업이 될지, 기존 통신상품의 번들용으로 작동할지도 분명치 않다. 사업자들의 전략적 선택에 달렸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가격경쟁이 유발될 수 있다. 가입자 기반 서비스의 특성상 요금은 고객 확보의 가장 확실한 무기다. KT와 통신사업자들은 여차하면 유무선 상품의 번들로 활용할 것이다. 이때 케이블사업자들로부터 심각하게 침식당한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영역을 ‘방어’할 여지가 생긴다. 당연히 저가 출혈 요금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케이블사업자들의 반발과 무한경쟁을 어차피 거쳐야 할 순서로 간주하면 그렇다. 그럼에도 KT는 고민이다. 그룹 전체가 사정 태풍에 휘말린 판에 이 같은 고도의 정치적·전략적 결정을 과감하게 밀어붙일 주체가 불분명이다. KT에 IPTV는 전사역량을 기울여야 하는 승부사업이다.
예단은 금물이다. 100% 보장받고 시작하는 사업은 없다. 오히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라는 점에서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 IPTV의 기술적 우월성과 첨단성 및 완성도에 ‘20년 통신전쟁’에서 갈고 닦은 고객 지향 서비스와 마케팅 능력이 결합하면 방통융합의 화려한 첫장을 열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를 포함한 IPTV 당사자 모두, 서로 자극받고, 그래서 자신의 본원 경쟁력을 높이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선순환 패러다임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제껏 방송과 결합한 DMB는 실패했다. 이해다툼과, 뺄셈의 비즈니스는 나눌수록 커지는 디지털 경제 시대의 무덤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