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KT 근무 시절이다. 1995년께 회사 차원에서 우수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을 대거 영입했다. 이들에게는 국내 거주를 위한 사택과 자동차는 물론이고 높은 급여를 제공했다. 당시로서는 파격 조치였고 이들은 KT의 앞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 믿었다. 이후 실제로 이들은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들의 지식은 뛰어났으나 조직 내 융화력, 커뮤니케이션, 협업정신 등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이것이 걸림돌이 돼 점점 외톨이가 되거나 관심 밖의 인물로 전락하곤 했다. 그리고 몇 년간에 걸쳐 하나 둘씩 퇴사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도 몇 년 전부터 많이 변화되고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에서 눈에 보이는 데이터(정형 데이터)는 학력·경력·외모·나이·집안 배경 등이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비정형 데이터)는 성격·자세·성실성·긍정적인 사고·적극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직장에서 “아무개는 진국”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아마 ‘진국’을 평가하는 기준의 비율은 20 대 80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비정형적 요소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회사도 이와 유사하다. 앞으로의 회사는 더욱 가치 중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가치 중심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를 잘 설명한 대표적인 예가 GE의 자산규모 대비 가치와 MS나 구글의 자산규모 대비 가치비교 자료일 것이다.
회사의 가치에 대한 평가기준도 개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데이터는 매출, 비용, 영업이익, 순이익, 종업원 수, 자산규모, 고객의 수 등이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는 기업문화, 기업철학, 경영층과 임직원과의 소통, 한 배를 탄 의식, 고객만족 등이 있다.
가령 우리가 여유재산을 가지고 투자를 한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회사에 투자할 것인가. 정형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상당수의 투자가들은 비정형 데이터의 비중을 높이 살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비정형 데이터는 일시적 이벤트나 경영진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닌 요상한 생명체 같은 존재다.
기업의 일하는 문화나 철학, 협력 분위기는 이것의 중요성을 느끼는 경영자의 확고한 확신과 그리고 환경 조성, 기다림을 기반으로 임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한 협동,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자연스러운 문화의 변신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아주 까다롭지만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형 데이터에만 몰두하는 경영자가 많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지식경영은 바로 튼튼한 비정형 데이터의 기반 위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다. 기업의 비정형 데이터를 강화하고 여기에 살아 있는 지식을 녹여 넣을 때 진정한 가치중심적 회사, 지식경영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 khhkhh@kcub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