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시장이 원하는 기술에 투자해야](https://img.etnews.com/photonews/0810/200810310096_31023456_561677701_l.jpg)
1980년대 비디오 재생기술 전쟁에서 소니는 자사 베타 방식의 우월한 성능에 자만한 나머지 마쓰시타의 VHS 방식에 참패했다. 그러나 최근 비디오 전쟁의 재현이라 일컫는 차세대 DVD 기술 전쟁에서는 소니의 블루레이가 도시바의 HD DVD를 누르고 완승하면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이번 차세대 DVD 전쟁에서 소니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워너 브러더스 등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와 삼성 같은 가전기업 등 우군을 많이 확보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술적 우수성이 아니라 시장의 구성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것이다.
이는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어야 글로벌 기업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 중소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도 철저히 ‘시장이 원하는 기술’에 집중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R&D 투자의 중요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으나, 과연 어떤 기술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는 다시 고민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기업의 R&D 투자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사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은 과연 무엇인가.
먼저 기술에 웃고, 시장에 우는 ‘나홀로 기술 개발’ 투자는 그만해야 한다. 기술 개발 자체가 목적이 아닌 시장에서의 사업 성공 가능성을 사전에 면밀히 검증, 이른바 ‘돈 되는 기술’을 엄선하고 이런 기술에 R&D 자금을 중점 투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R&D 프로그램 역시 사업적 성공에 초점을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 기술적 우수성뿐만 아니라 실제 그 기술을 가지고 생산하고자 하는 제품의 특성과 거래 형태까지 고려, 개발자 선호가 아닌 고객과 시장의 선택에 부합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전환돼야 할 것이다.
이미 선진 글로벌 기업은 R&D 기획 단계부터 고객과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 듀폰과 3M은 연구과제 발굴 시 반드시 마케팅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도록 해 시장의 요구에 맞는 R&D 과제인지 사전에 철저히 검증하는 한편, GE는 연구과제 수행을 위한 예산을 사업 부서별로 배정·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상용화 필요성에 따른 R&D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청이 40%대에 머물고 있는 중소기업 R&D 사업화 성공률을 향후 5년 내에 50% 후반까지 끌어올린다는 정책 목표를 다시 세우고 중소기업 R&D 제도를 대폭 손질한 이유도 우리 중소기업의 R&D 투자 방향을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맞게 전환하기 위함이다.
프로 골퍼라 할지라도 좁은 연습장에서 무수한 땀을 흘리고 많은 비용을 투자한들 막상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게 될 필드의 철저한 분석과 공략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중소기업 역시 R&D 투자를 확대해 사업적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근거 없는 기대만으로는 승자독식의 세계 기술 경쟁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시장을 알고, 시장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우리 중소기업의 ‘R&D 굿 샷’을 기대해 본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hong617@smb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