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클럽 회원권을 포기하더라도 구글폰은 구입한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미 가전 업계 연중 최대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의 쇼핑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보기좋고 비싼 제품보다는 실속있고 쓰임새 많은 휴대형 가전이 인기를 끌면서 유통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마케팅 전략 수립에 분주하다. 로이터는 최근 전미가전협회(CEA)가 실시한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전망 조사를 토대로 미국인들이 얇아진 지갑 때문에 쇼핑 예산을 줄이는 가운데 구글폰·아이폰·넷북·보급형 TV 등이 효자 품목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쇼핑 예산 14% ↓, 가전 반사이익 기대=경기 침체 여파로 11월 넷째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지는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의 쇼핑 목록을 작성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은 무겁다. CEA에 따르면 매년 블랙프라이데이을 앞두고 실시하는 소비자 대상 조사에서 올해 미국인들의 쇼핑 예산은 CEA가 조사를 시작한 15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올해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등 연휴 기간에 지난해보다 비용을 14% 덜 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CEA는 이같은 우울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헬스클럽 회원권이나 문화생활을 희생하더라도 전자제품 구매 비용은 늘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팀 허버트 CEA 시장조사국장은 “소비자들이 명품을 소유하기보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생산성을 높이고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휴대기기를 선호한다”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전 기기가 선물로 제격인 이유”라고 말했다.
◇구글폰·넷북·평판TV 인기 예감=다만 올해 시장에는 소위 ‘필수 구매 아이템(must-have item)’이 실종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예년만 해도 블랙프라이데이를 겨냥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닌텐도 위·시리우스의 위성 라디오 등 ‘대박 상품’이 출시됐으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CEA는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고객들이 주목하는 제품으로 구글폰·애플 아이팟과 아이폰·델의 미니 컴퓨터 등을 꼽았다.
신형 비디오게임 콘솔이나 40인치 평판TV, 스마트폰 등도 인기 아이템이다. 휴대형 기기 마니아들에게 필수적인 샌디스크의 80달러짜리 16기가바이트 메모리 카드, 컴팩트형 외장 하드 드라이브, MS의 웹캠 등도 인기 품목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프로스트&설리번의 무굴 크리슈나 디지털미디어 부문 글로벌 국장은 “특히 TV의 경우, 내년 2월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월마트 등 대형 유통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는 ‘비지오’ 등의 TV 브랜드 판매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생존 위한 전쟁 돌입=이번 블랙프라이데이는 가전 유통 업계에도 혹독한 침체기를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를 점치는 가장 처절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소비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가격 할인 마케팅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통가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최대 유통점인 월마트가 최근 휴대폰·블루레이플레이어의 가격을 대폭 낮추면서 베스트바이·서킷시티 등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JP모건의 크리스토퍼 호버스 애널리스트는 “서킷시티는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 어느 해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킷시티는 법정관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피하기 위해 150여개 매장을 폐쇄하고 수천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