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IT기업도 가끔은 느리게

[현장에서]IT기업도 가끔은 느리게

 대한민국만큼 유행 주기가 짧고 새로운 제품을 지향하는 곳도 드물다. 트렌드 세틀러(trend settler)가 정착시킨 하나의 트렌드를 대중은 서로 공유하고 빠르게 적응해 나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최신’이라는 말에는 독이 있다. 항상 가장 앞선 기술, 새로운 것을 원하고 그것에 편승하려다 보니 모두 일률적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한 분야가 완전히 성숙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신, 최첨단의 독은 내수 시장 과열에서 시작된다. 즉 기업이 저마다 가장 선진적인 제품을 내기 위해 제품 개발 시 과도하게 최신 기술 중심으로 설정하고 경쟁이 과열, 급기야 출혈경쟁으로 이어져 사회적 비효율성을 이끌게 된다. 더욱이 일부 최첨단 기술로 성공하게 된 기업이 해외로 진출했을 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받아들여질 때, 그 제품이 어떤 것이든 제품 수명주기(라이프 사이클)를 가지고 있다. 제품이 진입해 성장하고, 충분한 시장을 형성한 후 성숙기를 거친 다음 천천히 쇠퇴해 퇴출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과도한 최신화는 성숙되고 일반화되는 과정을 자칫 지나치게 좁히거나 없애버리기도 한다. 즉 선각 수용자에서 전기적 다수로 제품 이용자층이 넓어져야 하는데 그 틈을 넘지 못하고 떨어지는 제품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공간은 마치 블랙홀과 같이 신제품을 빨아들이는데 이것을 흔히 ‘캐즘(chasm)’이라고 부른다. 이런 캐즘으로 빠지는 첨단 제품은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시장에서 수용되기에는 너무 최첨단이어서 일 때가 많다.

 글로벌 시대, 최신만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세계의 흐름을 읽고 먼저 다양한 문화적 현상과 글로벌 기준을 충분히 이해한 후 성숙된 시장의 모습을 그려보고 이러한 현상과 기준 그리고 경쟁 속에서 기업 자신의 위치를 매핑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이로써 안정적인 시장 형성과 기업이윤 창출 그리고 사회의 효율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경호빈 KT 신사업추진본부 광고사업담당 hbk@k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