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 국무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1988년 이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경제 제제를 받아왔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모두 14개의 법률과 2개의 시행령을 통해 북한을 제재해왔다. 그만큼 북한과 미국 관계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번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는 그 해제로 인한 실질적 이익보다 정치적인 부문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사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는 곧바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적 국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예로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됐다 하더라도 당장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해 국제 금융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대외원조법이나 브레턴우즈협정에 의해 공산국가나 비시장경제 국가의 IMF 가입이나 지원이 불가능하도록 돼 있으며, 설사 이것이 해결돼도 IMF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할당받은 출자금의 25%를 선납해야 하는데 북한의 경제 상황으로 보아 이것을 당장 실현하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결정은 실질적 이익보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장 큰 효과는 미국과 북한이 상호 신뢰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북한과 미국은 핵문제에서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합의하고 이후 절차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상호 신뢰가 구축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유연성도 가질 수 없게 되고, 이것이 6자회담 미진척의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이유가 됐다. 그러나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통해 상호 합의한 원칙에 의해 핵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신뢰를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제는 기존에 합의한 대로 상호주의에 입각해 절차를 밟아 나가면 될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식 변화다. 이는 미국이 북한을 하나의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이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다. 이러한 변화가 이번 선거로 구성되는 차기 미국 정부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것인가 하는 부분이 남은 과제라 할 수 있다.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변화는 남북관계 변화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봉쇄 정책을 완화함으로써 기존에 우리가 추진하고자 하는 동북아 허브로서의 역할을 북한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의 필수 요소인 컴퓨터 및 노트북 반출이 자유로워지면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한 남북 교류가 좀 더 활성화될 것이다.
결국, 북한의 해제 조치는 북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긍정적 IT 교류를 가져다주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을 어떻게 국제사회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동화시켜 나갈 것인지다. 어두운 동굴에서 있다 갑자기 밝은 바깥으로 나오면 빛의 강도를 조절하지 못해 실명하는 수가 있다. 따라서 조금씩 빛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면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국제사회로 나오고자 하는 북한에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고 적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 또 국제사회는 북한이 적응할 수 있도록 과정에 대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이 인내와 이해의 시간이 앞으로 동북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한반도를 동북아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유완영 유니코텍코리아 회장/jamesu6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