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법인 제 목소리 내야 자율권 확보"

"현지법인 제 목소리 내야 자율권 확보"

“다국적 기업의 현지법인 대표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는 순간 해당 기업은 전혀 자율권 없는 집행기능만 갖게 됩니다. 본사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충분히 독자적인 전략을 펼칠 수 있는 다국적 기업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형원준 사장(46)이 SAP코리아를 맡은 지 2개월이 지났다. 그는 그 사이에 9명의 인력을 보강했고 조직개편도 진행했다. 물론 본사와의 협의를 거쳤지만 어느 국내 다국적 법인 대표와 달리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 결과다.

 형 사장이 자신있게 본사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이전 직장인 i2테크놀로지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i2테크놀로지코리아를 전 세계 i2매출의 7% 선까지 끌어올렸으며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아태지역 사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SAP에 와서 본사에 제안한 내용 가운데 70%는 받아들여졌다”며 “가이드라인의 취지를 이해하면 다양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형 사장은 SAP과도 인연이 깊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지난 1992년, SAP을 삼성전자에 소개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ERP 적용사례를 파악하기 위해 세계적인 화학기업인 바스프를 방문했더니 바스프 CIO가 그 당시에는 생소한 SAP을 소개했다”며 “당초 SAP은 검토 기업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으나 결국 제품력과 비전에 반해 SAP으로 결정하게 됐다”며 후일담을 소개했다.

 그는 SAP코리아를 단순히 국내 판매 조직으로만 내버려두지 않을 계획이다. i2테크놀로지스코리아 대표 시절 i2코리아 직원들은 전세계 프로젝트의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 내보내는 등 한국법인의 세계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SAP코리아 임직원 역시 국내 선진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전세계 SAP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형태의 역할 변경도 시도할 계획이다. 또 다국적 SW 기업으로는 드물게 제대로 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R&D 결과물의 세계화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한국인의 분석 설계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SAP코리아 임직원들이 아직 훈련이 덜 돼 있지만 능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면 이를 수행할 능력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다국적 IT기업 CEO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 “본사에서 한국에 대한 일종의 불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재권에 대해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잘못된 영업 관행때문에 한국을 요주의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 SAP코리아는 지재권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급작스런 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진정한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