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지 말게. “다음달에 홍보팀으로 발령날 것 같다”며 “덜컥 겁이 나 선배를 찾았다”는 자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네. 마케팅 출신답게 미지의 업무를 카운터파트 쪽에서부터 파악하려는 자네의 모습, 역시 믿음직했네. 짧은 만남이었지만 자네가 던져준 고민과 걱정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일세.
J, 스테레오타입도 현실이네. “겁난다”는 자네의 말, 동의하네. 언론을 접해보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기자’에 대한 웬지 모를 껄끄러움을 갖고 있지. 칭찬과 격려보다는 허술함과 단점을 파고들고, ‘비판’을 직업정신으로 하는 속성 탓일 것이라 짐작하네. “인간이 될 확률이 2억분의 1(기자와 정자의 공통점)”이라는 시중 우스개는 자네도 들어봤을 것이야. 게다가 자네 상사의 코멘트 역시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네. “술 먹느라 건강 해치기 십상이요, 매출 없이 돈만 써야 하는 부서를 곱게 봐줄 기업 별로 없다”며 “험한 업무 맡게 됐으니 각오 단단히 하라”는 그의 ‘충고(?)’는 과장되긴 했지만 근거 없는 험담은 아닌 것 같네. 적지 않은 기업에서 홍보실은 이미 3D 부서로 낙인 찍힌 상태일세. 하지만 J,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일 걸세. 홍보와 마케팅, 영업, 기획, 어떤 부서건 비즈니스라는 본질은 동일하다네.
J, 홍보맨은 ‘꿈’과 ‘가치’를 파는 사람이네. 이류 기업은 ‘상품’을 팔지만 일류기업은 ‘신뢰’와 ‘이미지’를 팔고, 초일류기업은 ‘욕망’을 파는 곳일세. 홍보맨이 뭘 팔까 의심스러우면 그들의 업무에 조금만 집중해보게. 그들은 ‘꿈’을 세일즈하고 소통하는 사람들이란 것이 나의 결론이네. 매장의 일선직원은 아닐지라도 소속 기업의 ‘꿈’과 ‘비전’ ‘전략’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지. CEO와 회사를 대신해서, 언론이라는 고객을 통해, 대중과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매개체인 셈이야. 그것도 가장 까다로운 ‘고객’에게, 가장 팔기 어려운 ‘상품’을 세일즈하는 것이네. 훈련되고 비판에 적극적이며 여론을 형성하는 소수의 고객 집단과의 접점은 그래서 늘 고단하고 위태롭지만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네. 사내 핵심역량을 투입해도 모자랄 판에 ‘어리버리 인사’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지. 물론 난관도 많을 걸세. 거칠고 고압적이며 막무가내 고객에 시달림당하기도 할 걸세. 때로는 ‘조직 보호’라는 이름으로 원치 않는 거짓말과 포장에 내몰리기도 하지. 그렇다고 본원적 가치를 몽땅 훼손할 필요는 없네. 비즈니스란 일정 부분 위험과 부작용을 동반한다네.
J, 신영철 SK야구단 사장을 보게
개인적 경험이지만 기업의 순위는 정확하게 해당업체의 홍보 철학과 일치한다네. “밥 사고 술 먹는 부서, 지출 일변도의 부서가 홍보실”이라는 천박한 인식이 지배하는 기업이라면 그것이 곧 그 회사의 수준일세. 그런 회사는 결코 ‘가치를 판매’하는 초일류에 오를 수 없네. 자네 스스로도 밝고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노력하게나. 롤모델을 하나 추천하지. 프로야구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SK야구단 신영철 사장은 SK텔레콤 홍보맨 출신이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하위팀 맡아 단숨에 우승시킨 능력이 아닐세. 그는 야구판에 ‘꿈’을 세일즈했던 최초의 풍운아로 기록될 걸세. 스포테인먼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할리우드 못지않은 ‘꿈 장사’에 나섰지. 홍보 내공의 뒷받침이 요인일 것이야. 조직에 대한 무한충성과 헌신, 가치를 팔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창조적 논리, 몸을 던지는 추진력과 소통능력 등 대부분 홍보맨 시절 체화된 무기가 있어 가능했다는 나름의 분석일세.
J, 생소한 분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자네가 늘 그러했듯 열정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네. 시도 때도 없는 출퇴근과 미팅일정으로 지금보다 훨씬 잔인한 불규칙 생활이 기다리고 있네, 늘 건강 조심하게.
이 택 논설실장 et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