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도 부족했고 준비도 되지 않아 승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달러와 5달러, 10달러 등 적은 돈으로 시작된 후원은 결국 나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 연설)
“오바마 이전에도 인터넷을 선거에 일부 활용한 정치인은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만큼 모든 기술을 통합해 활용한 경우는 없었다.“(미국 IT전문지 와이어드)
미국에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불가능에 도전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는 돌이켜보면 어느 것 하나 허술한 점이 없었다. 철저히 계획된 탄탄한 지지자들을 바탕으로 계산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중에서도 ‘기술(technology)’의 전략적 활용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새로운 선거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 신인인 그가 모은 선거자금은 6억달러(7000억원)이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200달러 이하 소액기부자(86달러)였다. 인터넷과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IT 전략 덕분에 그는 소액 기부금 모금액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울 수 있었다.
◇블루스테이트 ‘오바마 홈페이지’ 구축=오바마는 대선 경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때부터 IT선거 전략을 구상했다. 오바마의 온라인 선거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한 블루스테이트디지털에 따르면, 2006년 오바마 캠프로부터 첫 접촉이 왔다. 계약은 오바마가 대선 출마를 발표하기 9일 전인 2007년 2월에 맺었다. 블루스테이트는 각종 뉴미디어를 활용한 일종의 마케팅 집행 기관으로 오바마 홈페이지(My-BarackObama.com)를 구축했다.
오바마의 IT 선거전략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홈페이지를 단순한 홍보용 사이트가 아닌 유권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사회교류사이트(SNS)로 만드는 것이다.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링크드인과 같은 사회교류사이트에서의 지지자 커뮤니티 활동도 독려했다. 지지자들이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각종 선거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온 것은 물론이고 오바마의 로열티도 더욱 높아졌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데이터베이스(DB)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온라인 사이트 운용과 선거 이벤트로 확보한 DB는 ‘보트빌더(VoteBuilder.com)’라는 웹사이트에서 통합관리됐다.
마지막으로 DB를 바탕으로 한 ‘마이크로 선거 운동’이다. 유권자 개개별의 성향을 파악해 선거 자금도 효과적으로 모으는가 하면, 지지에 대한 개별 메일도 보냈다. 2만3000명으로 추정되는 오바마 캠프의 자원봉사자는 선거 전날까지 투표를 독려하는 전화를 돌렸는데, 존 매케인 지지자에게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캠프 중앙에서 보내준 상세한 DB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바마 캠페인 전략을 두고 ‘롱테일 정치(longtail politics)’ ‘위키 정치(Wiki politics)’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마샬 간츠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는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리더십이 무엇이지, 또 테크놀로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테크놀로지 대통령에 기대 부풀어=IT를 중시하는 오바마의 성향은 인수위 행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인수위 첫 작업은 홈페이지 개통이었다. 오바마는 공식 인수위 사이트(www.change.gov)를 만들고 미래 국가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e메일로 직접 모으겠다고 밝혔다. 홈페이지에는 ‘열린 정부’라는 문패가 달려 있으며 취임 직전인 내년 1월 20일까지 75일간 운영된다.
오바마는 또 내각에 IT 정책 사령탑 역할을 할 국가 최고기술담당자(CTO) 자리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크레이그 배릿 인텔 회장,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로렌스 레식 스탠퍼드 법대 교수, 세인 로빈슨 HP CTO 등 벌써부터 국가 CTO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특히 기술종사자가 많고 비즈니스 혁신이 끊이지 않는 실리콘밸리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기술형 대통령(tech president)’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어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은 매케인 후보보다 5배나 많은 선거자금을 오바마에게 몰아줬던 곳이며 여론 조사에선 91%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곳이다.
오바마도 이 같은 지지에 여러 차례 화답했다. 그는 미국 전역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으며 통합적인 국가 의료 정책을 위해 전자 의료 기록 시스템도 개발하는 등 전 분야에 기술과 정책을 결합시킬 예정이다. 실리콘밸리 엔들러 그룹의 롭 엔들러 애널리스트는 “오바마는 기술을 좋아하며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데 능하다”면서 “이것이 바로 그를 기술형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