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락에 장비업체 `휘청`

환율 급등락에 장비업체 `휘청`

 환율 폭탄의 여파가 통신장비 업계를 휘젓고 있다. 1차 직격탄을 맞은 외국계 장비 유통 기업에 이어 외국계 장비공급사(벤더)에 그 여파가 전이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장비를 구매하는 기업들까지 가격상승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유통사는 샌드위치 신세=시스템통합(SI), 네트워크통합(NI) 업체 등 국내 유통 기업은 샌드위치 형국이다.

1차로 신용장(L/C)에 따라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환차손, 계약과 공급 시점 차이에 의한 환차손 등 연거푸 타격을 받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이미 고객들에게 제품을 공급한 것이고, 후자는 제품을 공급해야하므로 발생하는 손실이다.

시스코, 주니퍼 등 외국계 통신장비 회사가 본사에서 직접 발주를 관리하기 때문에 환차손을 보상받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율 손실분을 고객들에게 떠넘길 수도 없어 이중고다.

◇벤더에 미치는 폭풍=콤텍시스템, 인성정보 등 중견 유통사들도 고객과 협의해 발주 시점을 한 두달씩 연기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에 따라 환율 폭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던 벤더에게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매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지난 8월 회계 연도가 시작돼 10월 말에 분기를 마감한 시스코는 이 같은 상황에 비상이 걸렸다. 분기 실적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사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결제 방식 다양화, 추가 할인 등의 방법들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일부 업체들에게는 10월 내 발주를 전제로 추가 할인을 하기도 했다.

◇장비 입고 거부= 국내 대기업 계열 SI업체 한 곳은 최근 계열사에 납품해야 하는 IP텔레포니 장비 입고를 거부했다.

이 회사는 환율 폭등에 따른 부담을 혼자 감내할 수 없다며 ‘버티기’에 나선 것이다. 결국 장비가 회사 앞 대로변에 방치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수백만달러짜리 프로젝트에서 오는 환차손 부담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초강수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고객 부담 가중= 환율 폭등은 결국 장비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본격적인 환율 폭등이 일어났던 9월 이후 1∼2달간 지켜보고만 있던 벤더들이 일제히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환율 인상분의 60∼70% 정도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가격 인상은 일반 기업의 투자 연기나 취소로 이어지는 게 더 큰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의 투자 축소는 곧바로 벤더나 유통사들의 실적 악화로 직결된다”며 “환율 폭등으로 인해 악재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게 큰 문제”라고 전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