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정체성은 지금도 헷갈린다. 아직도 일반인은 KT를 공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100년 국민기업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이다. 사실 KT 민영화 당시에도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속성상 정부의 정책 집행 수단이 되기도 하고 돈이 안 되는 오지 통신망 운용 등 보편적 서비스를 떠맡아야 하는 기업이다. 정부가 최소한의 통제력은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가 머리를 들었다. 이른바 황금주인 1주를 정부가 상징적으로 갖고 있자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도 있었지만 이 의견은 묵살됐다. 공기업 민영화의 원칙과 철학에 대한 훼손이라는 벽에 막혔다. 우려했던 일은 가끔 현실이 되기도 했다. 한지붕 식구였던 정통부와 KT는 ‘간섭 유혹’과 ‘민영 정체성’ 사이에서 파열음을 냈다. 급기야 진대제씨는 장관 시절 사견임을 전제로, “KT에 대한 정부의 황금주 보유 검토”까지 언급했다.
KT가 민영화 6년 만에 기로에 섰다. 그룹 핵심인 KT와 KTF의 사장이 동시에 구속되고 신임 사장을 선임한다. 벌써부터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군이 10명이 훨씬 넘는다. MB 혹은 권력실세와 이런저런 연줄이 그럴듯하게 포장됐다. KT의 전·현직 고위간부와 계열사 사장 출신들도 거명되고 이기태 부회장 같은 삼성의 현 경영진 영입설도 나온다. 인사는 안팎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을 찾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가장 지난한 개념이다. 시비는 승복할 수 없는 인사가 낙점될 때 시작된다. 그렇다면 결코 KT 사장이 될 수 없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낙하산’이다. 특히 권력핵심의 의중이나 그 인연이 작용했다는 오해를 살 만한 인물은 극력 피해야 한다. 이 경우 KT의 민영화 정체성은 고사하고 임기 내내 본격적인 외풍에 시달릴 것이다. 두 번째는 ‘비전문가’다. 작금의 KT는 그리 한가하지 않다. 성장은 정체됐고 수익은 ‘줄장사’에 의존한다. 새로운 엔진은 보이지 않은 채 영역 지키기에도 힘겨워하는 수세적 처지에 놓여 있다. 고도로 훈련된 정보통신 전문가조차 버거운 환경에서, 수습 기간 거쳐야 하는 사장은 ‘절대 사절’이다. 최악은 이 둘이 결합된 인물이 사장으로 선임되는 것이다. KT조직 망가지고 ‘공룡’ 쓰러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위의 두 조건을 통과했다면 또 다른 체크리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벤처정신’이다. 특히 거대 보수 조직인 KT에는 경영자의 도전의지가 절실하다. 지난 10여년간 KT가 시장을 창출하고 기술을 선도한 적은 드물다. 정부와 주주 눈치보기 바빴지, 위험 감수하면서 결단하고 추진한 프로젝트가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이슬비에 옷 젖듯이 KT의 경쟁력은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벤처정신이 결여된 KT사장은 의전용이다. 네 번째는 ‘카리스마’다. 사상 초유의 위기에서 KT를 추스리고 끌고 나갈 선장이라면 타협과 조화의 유화적 리더십보다는 장악력과 지도력이 우선이다. KT에는 가뜩이나 ‘시어머니’가 많다. 정치권, 정부기관, 언론, 심지어 내부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때로는 압력으로, 때로는 회유로, 간섭과 청탁이 끊이지 않는 기업이다. 게다가 KT의 고용과 투자 전략은 정부의 진행방향과 어긋나 있다. 마지막은 ‘상상력’이다. 시대흐름을 꿰뚫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조적 발상과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인물이면 금상첨화에 해당한다. 컨버전스라는 기술혁명의 한가운데에서, KT 사장만이 해낼 수 있는 상상력 경영은 또 다른 잣대가 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추위와 정치권력의 자제력이다. 사추위가 외부 입김에 휘둘리면 민영 KT는 ‘한국통신’으로 후퇴한다. 정치권력이 민간기업에까지 내 사람 앉히기와 코드인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그것은 곧 ‘폭력’이다.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기업과 정부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는 지금 우리가 혹독히 경험 중이다. KT는 마지막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