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구글이 자사의 웹브라우저인 ‘크롬(Chrome)’을 출시하면서 한국에 한해 ‘액티브X’ 기능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히자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액티브X 기능이 없으면 크롬 사용을 포기하려 했던 네티즌은 당연히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반면에 오픈소스와 웹 표준화를 지향하는 네티즌이나 IT전문가들은 구글의 이번 조치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웹 표준을 지향하는 구글이 이런 ‘의외의 결정’을 내린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크롬에서 액티브X 기능을 지원하지 않으면 크롬 사용자는 온라인쇼핑, 인터넷뱅킹, 관공서 공인인증 서비스 등 인터넷 사용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의 크롬으로는 한국인이 가장 즐겨찾는 포털 중 하나인 네이버의 카페/블로그 사진 업로드, 음악 듣기, 동영상 서비스 등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없다. 구글은 이런 상황 속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E)가 거의 잠식하다시피 한 한국의 시장을 도저히 뚫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웹 표준 진영에서 보면 구글의 결정은 반길 만한 조치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웹 표준을 지향하는 현 시점에서 오히려 한국의 인터넷 발전을 저해하는 퇴행적인 방침인 것이다. 하지만 구글 탓을 하기에는 한국의 인터넷 구조 자체가 너무 기형적이다. 한국에서는 사실상 MS 운용체계가 웹 표준이 돼버린 것이다. 한 국가의 인터넷 표준이 외국의 일개 기업의 기술과 정책에 이처럼 종속된 예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IT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한국이 갈수록 인터넷 세계에서 외딴섬이 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장점을 살려 해외로 서비스를 확장해도 부족한 판에, 세계 웹 표준화 대열에서 이탈한 결과, 한국에서만 통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서비스로 움츠러드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1년 전 외국의 한 IT박람회를 참관하면서 많은 외국바이어와 한국의 IT산업을 놓고 얘기할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한국에서 MS의 점유율이 98%에 이르고, 이런 이유로 MS가 사실상 한국의 웹 표준이 돼 한국에서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에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럼 MS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변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 무척 곤혹스러웠다.
지금 세계는 모든 기술과 서비스 영역에서 표준화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어떤 식으로 표준화하는지가 해당 산업에서의 권력을 재편한다. 하물며 표준화 대열에서 벗어나서는 스스로 세계 시장으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현재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모바일 플랫폼 전쟁에서도 우리는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고 있다. 표준화에 뒤처지면 곧 경제적 불이익에 처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 종속도 불가피하게 된다.
이미 한참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보와 지식이 권력이 되는 지식기반 시대에 모든 이에게 평등한 정보접근권을 부여하고 한국이 인터넷과 모바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화에 동참해야 하며, 더 나아가 표준화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방과 참여와 공유를 주요 가치로 지향하는 웹2.0 시대에 웹 표준화는 개인을 위해서나 기업과 국가를 위해서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강송규 엔에이포 대표이사 kang@na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