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자업체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면서 견제도 커지고 있다. 현재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휴대폰 넉 대 중 한 대가 한국산이다. TV는 석 대 중 한 대나 된다. 메모리 반도체도 세계 1, 2위를 우리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전자업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올림에 따라 해외 경쟁사의 딴죽 걸기도 늘고 있다. 툭하면 일어나는 특허 침해 소송은 대표적이다.
18일에도 미국 전자업체 코닥과 플래시메모리 업체 스팬션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코닥은 삼성과 LG의 카메라폰이 자사의 이미지 캡처·압축 기술과 데이터 저장 기술 등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뉴욕 지방법원에 소장을 냈다. 미국 AMD와 일본 후지쯔가 합작해 만든 스팬션 역시 삼성이 자사의 10개 특허기술을 아무런 보상 없이 사용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안에 삼성과 LG는 “특허를 침해 한 적이 없다”며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비록 이번 소송이 두 회사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특허 소송이 으레 그렇듯 장기적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부담이 불가피하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날수록 이 같은 특허 침해 소송은 늘어날 것이다. 특히 기술개발이 빠른 IT 분야는 그 특성상 특허 침해 논쟁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 이는 휴대폰·카메라 같은 IT기기가 컨버전스화됨에 따라 이전보다 특허 침해 소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경쟁업체의 시장 잠식을 막고 특허권 사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이번 코닥과 스팬션 소동도 면밀히 검토해봐야겠지만 견제를 위한 전략적 소송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에는 미 정부가 LCD 가격 담합을 이유로 LG전자에 유례없는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행여 민주당 정부 탄생 이후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고개 든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불과 얼마 전에도 우리 기업은 미국과의 소송에서 이긴 바 있다. LG전자가 지난달 말 월풀과의 4년여에 걸친 전자동 세탁기 특허 소송에서 승리했고, 삼성전자 역시 퀄컴칩을 내장한 신형 휴대폰의 미국 내 수입금지와 관련해 승소했다.
이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 IT기업의 특허 소송은 증가세에 있다. 실제로 특허청이 지난 9월 발표한 자료에서도 IT분야 특허 소송이 1999년 19건에서 지난해 152건으로 8배나 늘었다. 사실 특허 침해 소송은 우리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인텔·노키아 같은 글로벌 IT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도 이른바 특허 괴물(patent troll)이라 불리는 특허 소송 전문기업에 과거 거액의 배상을 한 적이 있다. 특허 분쟁이 국적을 불문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세계 경기 침체는 ‘일단 걸어놓고 보자’는 식의 특허 소송을 유발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특허 방어가 약한 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날로 높아가는 글로벌 특허 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하루속히 특허 친화형으로 체질을 바꾸고 분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또 교차 라이선스를 확대해야 하고 전문인력 양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