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 상처뿐인 KT사장 선임

[이택칼럼] 상처뿐인 KT사장 선임

 이 무슨 난장판인지 모르겠다. 명색이 ‘100년 국민기업’인 KT의 사장 선임이 온갖 잡음으로 얼룩지고 있다. 민간기업의 CEO 선출을 둘러싸고 이처럼 흙탕물을 뒤집어 쓴 사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언론의 과열 취재와 추측성 보도 탓이라고 넘겨 버리기에는 사정이 간단치 않다. 전임 남중수 사장이 가뜩이나 한국의 간판 CEO에서 한순간에 몰락한 판에 후임자 선정에서 보여준 KT의 역량 역시 기대 이하다. 게다가 이미 사라졌다고 간주됐던, 인사철만 되면 정치판을 연상케 했던 KT의 ‘치부’가 고스란히 제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안팎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뿔뿔이 산개해 자신에게 유리한 인물을 상정한 채 주판알 튕기기에 한창이다. 사장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의 독립성과 원칙이 흔들린 것이 시발점이다. 정부당국에조차 사추위원 명단을 함구하는 등 철저한 ‘보안’을 내세웠지만 내부 이견으로 이미 원칙은 무너졌다. 사퇴자까지 나왔다. 우스운 것은 자기 회사 정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희망자 공모 이후 법석을 떤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외풍 시비를 낳았고 유력 인사 내정설까지 흘러다녔다. ‘정황증거’도 충분하다. 이런데도 사추위와 KT는 아직 정리된 공식 방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덕분에 사장 공모에 나섰던 모든 후보자는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됐다.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체면을 구겼다. 이석채 전 정통부 장관, 김창곤 전 차관,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등이 ‘정관 25조’에 걸려 구설수에 올랐다. 반대파의 언론 플레이인지, 내부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론 떠보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결격 논란 자체가 그들에게는 흠집이 된다. 유력 후보로 알려진 이 전 장관에게는 벌써부터 야당은 물론이고 일부 시민단체들이 나서 반대 압력을 넣고 있다. 노동조합도 가세했다. “이러저러한 요건에 해당하는 인물이 사장으로 선임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성 의견 제시에 적극적이다. 내우외환에 빠진 KT의 소방수를 자처하던 인물들에게는 황당함 그 자체일 것이다.

 압권은 KT 출신 인사들에 대한 일종의 ‘명예훼손’이다. 역차별 수준을 넘어섰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사추위원들이 외부의 명망가를 선호하고 KT 출신은 가급적 배제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뚜렷한 기준도, 사내외 공감대도 없지만 사추위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관 25조 사태’는 이 같은 보도에 신빙성을 제공했다. 국민들 눈에 그렇게 비친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한심스럽다. KT 출신이 죄인가. 김홍구·송영한·이상훈·박부권씨는 오늘의 KT를 이끌어 온 산증인들이다. KT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고 전문성과 리더십을 검증받은 사람들이다. 남 전 사장과 CEO 자리를 두고 경합했거나 내부 역학관계 탓에 자회사 사장 혹은 외부기관으로 밀려난 인물들이다. 작금의 상황은 ‘KT의 때가 묻은 사람은 안 된다’는 얼토당토한 출신성분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기준을 제시해 사람 망신시키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옳다. KT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폄훼요 임직원의 자존심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것이다. 이상철, 이용경, 남중수 사장까지 KT의 역대 CEO는 내부 발탁이었다.

 사추위는 갈팡질팡, 내부 조직은 ‘하늘’만 쳐다보는 사이 후임 사장 인선은 아수라장이 됐다. 정치실세와 청와대 개입설, 심지어 내정자를 정한 채 공모한 요식행위라는 극단적 해석이 난무한다. 이쯤 되면 누가 신임 CEO로 추천되든 자격시비와 정통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관 문제를 확실히 하고, 객관적이며 투명한 심사를 거쳐 현 후보군에서 결정할 수도 있다. 또 사장 선임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밟는 것이 해법이라면 수용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KT의 신임 CEO는 시장과 직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업고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할 인물이다. KT가 어깃장 수순으로 내달리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