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휴대폰-디스플레이를 믿는다

[이택칼럼]휴대폰-디스플레이를 믿는다

 정치권력이 “IT는 일자리를 줄이는 것”이란 ‘삽질 경제’의 프레임에 갇혀 있을 때 기어이 일은 터졌다. 수출 효자산업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에 빨간불이 켜졌다. 적자 전환의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주식시장에는 아예 난파선 분위기로 몰고가려는 일부 외국계 투자자들의 행태가 더해진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초일류기업들을 거의 패대기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거나, 이익률 축소를 예로 든다. 공포는 혼란으로, 다시 패닉으로 연결된다. 덕분에 올해 1조원 이상의 이익을 낼 어떤 기업은 청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주가에 분통을 터트린다.

 어려운 때일수록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면을 보자. 경제는 심리라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우리 정부요, 투자 전문가들이었다. 반도체는 일단 제외하자. 지구상에서 맨 마지막으로 망할 반도체 회사가 삼성전자라는 건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휴대폰과 디스플레이가 남는다. 치킨게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세계 휴대폰 시장은 2강3중 체제다. 톱 노키아에 삼성이 도전한다. LG전자, 모토로라, 소니에릭슨은 엎치락 뒤치락이다. 3, 4분기 흑자는 노키아와 한국의 2개 기업이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은 적자다. 이런 추세는 가속화될 수 있다. 삼성은 점유율이 높아졌고 LG는 수익성이 올라갔다. 애플과 구글, 림이 뛰지만 아직 덩치에서 한참 밀린다. 대당 판가하락 및 수익률 저하를 점유율 상승과 맞바꾼 것은 삼성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당분간은 노키아향 전략을 밀어붙일 태세다. LG는 북미와 유럽에서 나머지 업체들만큼 직격탄을 맞았지만 선방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했고 짭짤한 두 자릿수 수익률 방어에도 성공했다. 수익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은 계속될 것이다. 내년은 자칫 휴대폰 사상 최초로 역성장의 해가 될 수도 있다. 개발력과 생산력, 브랜드파워, 마케팅 능력, 시장 선도력 등을 종합할 때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회사는 노키아, 삼성, LG 정도다. 모토로라는 매각에 치중하고 소니에릭슨은 살아남기 위해 개발 및 출시 모델 수를 대폭 줄인다.

 디스플레이는 한국의 경쟁 우위가 확고하다. 지난 여름 대만을 따돌리고 출하량 1위를 탈환했다. 물론 업계 서열 1, 2위는 삼성과 LG디스플레이다. 이번 4분기에 한국을 제외한 10위권 기업들 모조리 적자로 돌아설 것이다. 위기에는 품질과 가격, 안정적 거래처가 차별화의 열쇠가 된다. 대만업계의 어려움도 미국 세트업체들의 주문 감소가 주요인이다. 절정은 내년 1분기가 되겠지만 삼성과 LGD는 버텨낼 여력이 충분하다. 벌써 대만업체들은 정부 지원이 뒤따를 것이란 설까지 나온다. 감산과 투자 연기로 대응해봐야 얼마 못 간다. 지금도 한국과의 격차가 1∼2년인데 더욱 벌어질 것이다. 삼성과 LGD는 투자에 나선다. 기술, 제품, 원가 경쟁력을 겨냥한 2조원 이상의 투자는 과감히 집행하기로 했다. 학습효과도 분명하다. 90년대 LCD 공급과잉으로 세계 시장을 과점했던 일본업체들은 투자를 미뤘다. 후발주자 삼성이 전격적인 투자를 감행했고 결국 시장 진입 3년 만에 1위로 올라선 이후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LGD 역시 지난 2년간 적자 감수하면서까지 투자에 올인한 덕에 올해 대박을 터트렸다. 자금력이 절대적이지만 돈을 태울 타이밍을 잡는 결단력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업이 디스플레이 분야다. 눈앞의 이익 회수에 급급해 불황에 투자하지 말라며 압력 넣는 투자자들에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기업은 지속성장 가능성이 우선이다. 게임의 승자에게만 달콤한 열매가 기다린다. 비록 경기 침체의 늪에서 고통스러운 싸움에 내몰린 휴대폰과 디스플레이 산업이지만 여전히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