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냐 기회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엔화 가격이 일본 기업의 전략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고 있다. 샤프 등은 실질 구매력이 40∼50% 높아진 엔화를 무기로 대규모 투자와 기업 인수의 기회로 활용하는 반면, 도요타자동차처럼 수출에 직견탄을 맞아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샤프는 이탈리아에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전지 공장을 짓기로 확정지었다. 이번 공장 건립은 유럽 2위의 전력회사인 에네르와 합작형태로 이뤄지며 투자비만 1500억엔(약 2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앞서 NTT도코모는 인도 타타그룹 계열사인 타타텔레서비스(TTSL)에 2600억엔을 투자, 지분 26%를 확보했다. 세계 2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도쿄일렉트론은 적자 속에서도 과감한 인수합병과 장비 및 생산설비 투자에 배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확보한 현금을 배당금 인상에 쓰기보다는 미래 사업에 전략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난 9월 미국 금융 투자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질 때 적지 않은 자산이 일본 기업 손으로 넘어갔다. 일본 최대 증권회사인 노무라홀딩스는 파산한 리먼브러더스홀딩스의 IT부문 절반을 인수했다. 인도 뭄바이에 있는 약 3000명 규모의 리먼브러더스 IT서비스 인력이 노무라 산하로 재배치됐다.
톰슨로이터의 집계에 따르년, 올해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M&A 규모는 전년 대비 3.7배나 늘어난 626억달러로 사상 최대에 달할 전망이다.
반면 엔화의 ‘나홀로 강세’로 단가 인상 압박을 받고 있는 일본 수출기업들은 세계 경기 침체 여파까지 겪으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3월 결산법인인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73.6%나 감소한 6000억엔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도요타는 엔달러 환율이 1엔 떨어질 때마다 400억엔의 영업이익이 추가로 감소할 것으로 본다. 닛산도 올들어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16% 급등한 탓으로 하반기 영업이익이 784억엔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엔 도요타자동차 협력사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도요타자동차 생산의 본거지 아이치현의 비정규직 실업자수가 일본 내 최다를 기록했다.
캐논은 엔화강세로 수출과 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해 내년 1월 착공 예정이던 오이타현 공장 착공을 6개월 연기했다. 순이익 목표치도 환차손 때문에 종전 5000억엔에서 3750억엔으로 낮췄다.
파나소닉는 2008년 순이익 규모를 지난 4월 예상치보다 90%나 줄어든 300억엔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해 충격을 줬다. 파나소닉 순이익과 영업이익이 감소하기는 2002년 3월말 결산 이후 7년만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최근 실업률 보고서에서 “자동차·전기 등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일수록 비정규직의 감원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정훈·류현정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