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인터넷’이라는 단어를 입력할 때마다 항상 끝에 있는 시옷에 신경을 쓰게 된다. ‘왜 시옷을 썼을까’ 하는 것 때문이다. 원어의 ‘Internet’은 분명히 T로 끝나 뒤에 모음이 따라오면 ‘트’ 발음이 나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시옷 받침을 써 ‘스’ 발음이 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소리나는 대로 적으라는 한글 맞춤법 제1항의 위반이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지를 찾아 봤다. 그 이유는 지난 1985년 정부에서 고시한 외래어 표기법 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 만을 쓴다’가 원인이었다.
사실 우리 글의 모든 자음은 기역(ㄱ), 니은(ㄴ)처럼 모두 초성과 종성(받침)을 조합해 부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제한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한글맞춤법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한글 자모를 24개로 축소한 것과 자모음의 무한한 조합을 유한하게 축소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말의 소리를 24자로 국한시킨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말뿐 아니라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글인데 이제 와서는 사람의 말소리조차도 제한하는 문자가 된 것이다.
두음 법칙도 문제다. 두음 법칙의 모든 예는 한자로 된 말이다. 특히 그 한자의 음가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지 중국 발음도 아니다. 그래서 한자로 적은 단어를 발음할 때는, 알타이어계 사람들이 단어 초성에 나오는 ‘R’나 ‘L’ 발음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읽을 때에 다른 발음으로 읽는다는 것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렇게 두음 법칙은 읽는 법칙이지 적는 법칙이 아닌 것이다. 사실 한글 맞춤법대로 적으면 두음법칙은 아예 언급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어쨌든 이 두음법칙 때문에 수많은 한글 종씨들을 만들어 놓았고 ‘R’ ‘L’ 발음은 할 수 있어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적기 위해 만든 것이지, 한글 자모를 24개로 국한하고, 보조 부호를 무시하고, 두음법칙을 강요하는 등으로 우리말을 속박하려고 만든 것이 결코 아니라 믿는다.
한글의 우수함은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리를 내는 기관에 맞게 만들어지고 그 음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표현한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는 체계가 없는 만국 발음기호에 비하면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980년대에 읽은 ‘일본말의 비극’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은 일본말이 일본글 다섯 모음과 50자에 속박돼 말의 발전을 저해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말에도 일어나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제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화된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다. 세계가 서로 어우러져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게 되고, 따라서 외래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이에 따라 한글은 우리말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 어느 나라 말도 표현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한글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완전한 체계를 가지고 말이다. 이제 세종대왕이 창제했던 옛 28자를 되찾아 잃어버린 우리의 소리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무제한 활용을 허용,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한글의 새로운 자판을 개발하고 대중화할 것을 제안한다.
양승택/부산과학문화진흥회 이사장·전 정통부 장관 yangst09@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