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IT히트상품을 기대하려면

[이택칼럼]IT히트상품을 기대하려면

 결산 시즌이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올해의 히트상품’을 선정한다. IT분야에서는 딱히 떠오르는 대상이 없다. 아무리 글로벌 경기침체로 허덕이고 있다지만 올해처럼 히트상품의 빈곤이 부각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물론 번득이는 아이디어 상품이나 틈새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제품은 여럿이다. 그럼에도 한국 산업계 혹은 지구촌 규모의 빅 히트상품은 찾아 보기 어렵다.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 IT 개발자들이 우리 삶을 바꾸어 놓은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2004년 싸이월드의 빅 히트는 문화로 고착됐다. MP3 플레이어는 내수와 수출의 주력제품으로 떴다. 이듬해는 내비게이션의 해였다. 몇몇 중소기업에서 출발한 내비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했다. 2006년은 UCC가 태풍을 몰고 왔다. 성숙기 산업도 꾸준한 기술혁신으로 시장을 이끌었다. 평판TV와 LCD 모니터는 소비 트렌드의 주류로 올라섰다. 휴대폰은 카메라 화소경쟁에서 두께 경쟁으로 다시 음악과 UI 뽐내기로 추세를 이동시켰다. 시장과 사용자의 마음을 얻었다. 카트라이더를 중심으로 한 게임은 콘텐츠도 팔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수년간 IT성장엔진으로 작동하던 히트상품 메커니즘이 주춤해졌다. 싸이월드의 참신성은 떨어졌고 MP3P는 상징적 기업이 몰락했다. 내비게이션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사업자 난립과 과당경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미운 오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새 정부의 옥죄기에 주눅든 인터넷 관련 산업은 숨 고르기를 넘어 생존 모드로 전환했다. 게임 역시 명맥 유지 수준이다. 대부분 일시적 성공에 안주하거나 연구개발에 소홀했던 탓이다. 그나마 자금과 마케팅 능력이 안정적으로 확보된 대기업 제품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평판TV와 휴대폰은 미국에서조차 ‘넘버원’이다. 세계시장은 우리와는 달리 엔진이 돌고 있다. 워크맨 이후 ‘메이드 인 재팬’의 힘을 과시한 닌텐도 시리즈는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진화 중이다. 구글과 유튜브의 명성은 여전하고 인맥 쌓기 사이트는 불황을 모른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천재적 혁신성을 과시하는 애플답게 기술과 시장, 소비문화의 이슈를 한꺼번에 휘어잡았다. 예컨대 아이폰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전 세계 누구나 게임 등을 개발해 앱스토어라는 온라인 장터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개방성과 공유의 정신, 나눌수록 커지는 콘텐츠 산업의 핵을 꿰뚫은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 셈이다.

 개구리의 도약은 움츠림에서 시작된다. 기술적 창의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IT시장에서 연구개발인력은 마지막 보루다. 치킨게임은 자금과 양산기술이 동원되는 일부 품목, 대기업의 전장일 뿐이다. IT업계는 히트상품 발굴에 목말라 있고 이를 통해 비로소 성장엔진이 재가동된다. 해결책은 연구개발자의 손에 있다. 애플이나 닌텐도가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은 아니다. 한국은 누가 뭐라 해도 IT가 경쟁력이고 사람이 자원인 나라다. 그래서 멀리 뛰겠다며 IMF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맨 먼저 연구개발자를 거리로 내모는 일은 삼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주저앉는 것이다. 주기론적으로 보면 내년쯤이면 한국의 IT 히트상품이 잇따를 것이다. 엔진을 돌리려면 점화 스파크가 필요하다.

 이 택 논설실장 et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