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D램 업체인 독일 키몬다가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반도체 치킨게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무려 2년에 걸친 출혈경쟁 끝에 철옹성 1위 삼성전자를 제외한 2위 이하 업체들이 퇴출이냐 생존이냐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세계 2위 낸드플래시 기업 도시바는 감원과 조업단축을 돌아설 것이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일본 엘피다는 마이너스 13억2900만 달러, 대만 프로모스와 미국 마이크론도 각각 마이너스 7억200만달러와 3억7900만달러 수준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는 감산으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감원을 통해 경상경비를 축소하는 비상 대응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별무효과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비관론자들은 세계 반도체업계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퇴출은 내년 4분기에나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 기간산업의 파산을 지켜보고만 있을 정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키몬다의 모회사인 인피니온은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접촉 중이라는 보도가 전해졌다. 특히 WTO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만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미 몇몇 기업이 자국 정부로부터 대출연장 혹은 지원책을 수혈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살아 남을 경우 승자 독식의 대박이 기다리고 있는 치킨게임의 속성상 각국 정부는 금융권 구제금융 수준의 지원책을 쏟아낼 것이다. 물론 WTO 제소가 시비거리가 되겠지만 이를 피해갈 수 있는 갖가지 정병행 추진키로 했다. 요카이치와 오이타 공장 가동을 멈추고 기타규슈와 오이타 공장에서 약 800명의 근로자를 감원한다. 도시바가 생산 중단을 단행한 것은 7년만이다. 도시바는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595억엔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끊질기게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대만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파워칩은 5900억원 매출에 5천900억원 손실을, 난야는 4500억원 매출에 3500억원의 손실을 냈다. 물건을 팔수록 적자가 쌓인다. 하이닉스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실제로 JP모건은 반도체 가격이 올해처럼 50% 이상 하락한다면 1조원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하이닉스는 내년 4분기께 마이너스 1억1700만달러로 책적 대안이 동원될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도 하이닉스의 생존을 위해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윤호 장관의 언급처럼 하이닉스는 여타 해외 경쟁기업 가운데 그나마 가장 우수한 편에 속한다. 생산력, 자금력, 개발력, 경영능력 등을 따져봐도 삼성전자 이외에 마지막까지 살아 있을 기업이다. 대주주를 구성하고 있는 채권단이 공동으로 자금 수혈과 투자 지원을 모색해야 한다. 하이닉스 역시 불요불급한 라인 투자 축소, 임직원 임금 인하 등 자구책을 착실히 실행키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세련된 접근 방법이다. 어차피 직접지원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 하이닉스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는 피해야 한다. 국제시장과 업계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는 조용한 행보가 요구된다. 이 장관의 발언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하이닉스 대책은 지금부터 완급조절에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