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서민들 먹고사는 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하나만 고른다면?
1.종부세 및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2.사이버모욕죄 신설 3.이재오 귀국과 박근혜 행보 4.대통령 형님 논란 5.없다
초유의 경제난에 힘겨운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서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할 답은 ‘5. 없다’일 것이다. 예시문은 제18대 정기국회 100일간의 실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집단이 존재한다. 정치 권력자들과 일반 서민 집단. 이 둘의 가치와 철학, 지향성과 관심사는 전혀 다르다. 서민 집단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간판을 내리고 중소기업은 퇴출 단계에서 마지막 몸부림이다. 엄동설한에 실직자들이 넘쳐나고 중산층은 이미 몰락 중이다. ‘88만원 세대’의 절망은 어느새 그들이 그토록 ‘짱돌’을 던지고 싶어했던 ‘386 세대’에까지 밀려왔다. 그래서 이들은 애처롭게 매달린다. 대통령 만나면 “제발 먹고살게 해달라”며 울음부터 터뜨린다.
정치권력 집단에는 민생이 없다. 옆집의 탄식과 애원에는 적당한 립서비스로 갈음하지만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는 득달이다. ‘부자 퍼주기’ 비판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시적으로는 부자들 감세안이 서민경제에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이판국에 부동산 세제가 국정 제1순위가 돼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여당은 슬그머니 교육세 폐지와 방송 수신료 인상을 추진한다. 세금을 줄이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없앨 것이 따로 있다. 그나마 열악한 교육재원 충당의 원천을 꼭 이 어려운 시기에 폐지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무너진 공교육을 되세우려면 늘려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가면 계층 간, 지역 간 격차는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쳐 대물림된다. 대학생의 40%가 학자금을 융자받고 한 해 3만명 이상이 상환 연체자로 낙인찍히는 현실이다. 이들의 또다른 관심사는 권력 다툼이다. 여당은 권력지형 변화에, 제1야당은 여전히 ‘난닝구 빽바지’ 논쟁에 갇혀 있다. 제2 야당은 ‘여당 2중대’ 지칭에 전면 항거 중이다. 덕분에 올해도 새해 예산 처리의 법정기일을 넘겼다. 오바마는 취임도 하기 전 “1분도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우리 정치권은 금쪽같은 100일을 허송세월한 셈이다.
정치인들은 ‘헛바퀴 정부’와 동거한다. 환상의 궁합이다. ‘발표’에는 강력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정부다. 경기부양용 대책과 서민용 자금을 얼마 풀겠다느니, 요란한 발표만 있을 뿐 그것으로 끝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은행에 (돈을) 풀지만 정작 시장에는 안 풀린다”고 안타까워한다. 집중지원을 받은 시중은행의 지난달 기업 대출은 오히려 전달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칠쳤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제 살기 바쁜 은행을 탓하거나 법률 통과를 가로막는 국회에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한다. 비상시국에 걸맞은 TF를 구성해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집행 과정까지 체크할 수 있을 텐데 웬일인지 소식이 없다. 서슬퍼런 관리 감독권은 창고에서 낮잠 중이다. 한쪽에선 개혁을 외치며 사람 자르라는 신호를 보내고, 다른 쪽은 고용 유지가 우선이라며 해고 자제를 요청하는 것도 우습다. 이 정부가 국정을 컨트롤할 자질과 능력, 성공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지도자는 권력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정당성이 결여된 권력은 폭력에 불과하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권력과 폭력은 늘 동전의 양면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