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 탑재 의무화가 폐지되면서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곧 휴대폰 시장의 전면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 시장에 외산 제품이 밀려들어오면 국내 기업들이 타격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관심 대상인 애플 아이폰이 가장 각광받고 있다. 림과 노키아가 가세하면 스마트폰 시장이 국내에서도 만개할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초기 단계에는 아이폰 등 일부 고가 제품이 우선 진입을 시도하겠지만 휴대폰 회사들의 단말기 라인업 전략에 따라서는 국내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다. 가장 무서운 적군인 노키아의 중저가 모델이 집중 투하되면 만만치 않은 점유율을 나타낼 것이다.
하지만 시장 개방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마치 한국 업체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됐다. 한국을 제외한 모든 시장에서 외산과 직접 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노키아, 구글에 대한 실전 경험도 충분하고 나름의 대응 전략도 추진 중이다. 더구나 안방에서 벌이는 싸움이다. 한국의 홈 어드밴티지는 상당하다. 우리나라는 매우 독특한 소비 패턴을 갖고 있는 곳으로 외국 기업이 발붙이지 못하기로 소문난 일본 시장보다 더욱 까다로운 전장이다. 시각이 글로벌화된 마니아층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익숙한 소비 및 사용 환경에 길들여진 가입자도 넘쳐난다. 조그만 버그에도 곧바로 외면으로 응답하고, 세계 제일의 즉응적, 현장성을 갖춘 애프터서비스망이 당연한 곳이다. 비록 사업자들의 지원이 강력하다 해도 연간 2000만대 안팎의 규모에 불과하면서도 강력한 로컬 업체들이 버티고 있는 한국 시장에 외국 기업들이 맞춤형 기술 및 마케팅력을 동원하기에는 매력이 크지 않다. 또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한국적 정서’도 국내 업계에 유리하다. 1990년대 최강 모토로라가 한국에서 몰락한 것은 “한국적 지형에 강하다”는 컨셉트를 강조한 삼성 애니콜의 대박 행진에서 비롯됐다.
아이폰의 열광이 한국에서도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제아무리 혁신적이고 막강한 기능을 탑재했다지만 한국인이 선호하는 디자인과 사용 환경에 부합한다고 단정짓기도 곤란하다. 더구나 휴대폰 단일업체 간 경쟁보다는 여기에 가세하는 수많은 부품 및 콘텐츠 기업 등을 아우르는 진영 간, 생태계 간 싸움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방어력을 무시할 수 없다. 사업자들 역시 자신의 기득권과 단말기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외산 업체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계약에 선뜻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 계층, 특화 시장에서 일정 부분 점유율을 내주기는 하겠지만 국내 업계가 허무하게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도 엄존한다.
휴대폰 시장 개방은 국내 업계와 소비자 모두에 서로 이익이 되는 선순환 구조의 정착을 지향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국내 업계는 안정적인 이익을 선사했던 독점 시장이 깨지는 대신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소비자 역시 경쟁을 통한 휴대폰 가격 인하와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돼 손해볼 일이 없다. 국내 업계는 너무 움츠러들지도 말고,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차분히 내수 전쟁을 준비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