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자정부추진단 일원으로 이달 초 일본의 전자투표 현황을 견학했다. 나고야 근처의 소도시인 욧카이치시에서는 당시 시장 선거를 치르고 있었는데 25만여명의 유권자가 총 59개의 투표소에서 투표했다. 고령화 사회로 인식되는 일본 사회에서 ‘어르신’ 유권자들이 익숙한 동작으로 전자투표기의 터치스크린을 거쳐 투표를 하고 선거 관계자들은 전자투표기 사전 점검, 카드 발급기 조작, 대체 전원 확보 등 제반 절차를 일사불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일본은 지난 2001년 ‘e재팬 전략’에 따라 지방선거에서 전자투표 도입 근거를 마련하고 2002년부터 지방자치단체별로 전자투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측 관계자는 유효 투표율 제고와 비용 절감을 전자투표의 이점으로 들었고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독립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킹 등의 보안사고 위험에서도 자유롭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은 설문조사 결과, 유권자 중 87.3%가 종이투표보다 전자투표를 선호하고, 93%는 전자투표가 더 편리하다고 응답할 정도로 전자투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전자투표 도입은 비단 일본만의 사례는 아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G7 국가는 이미 지난 2000년대 초반 전자투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는 2007년 대선 당시 82개 선거구에서 전자투표를 실시해 150만명의 유권자가 터치스크린 전자투표를 경험했다. 우리보다 IT에서 뒤떨어진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권 국가도 전자투표를 도입하고 있다. 투표율 제고, 유효 투표율 제고, 개표시간 단축, 선거부정 방지 등 국가별로 전자투표 도입 목표는 다양했으나 공통점은 IT를 활용해 국가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제고하자는 것이었다.
자타 공인 IT 강국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05년 전자투표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를 2010년 지방선거에 정식으로 도입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사전 비용이 새해 예산에 반영돼 있지 않아 전자투표 도입은 더 지연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개발된 시스템은 그동안 정당 선거, 대학총장 선거, 조합장 선거, 학생·민간선거 등에서 500여 차례 활용돼 그 안전성이나 효용성은 충분히 검증받은 상태다. 유독 공직선거에만 도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자투표가 다양한 장점을 갖췄는데도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가령, 전자투표는 투·개표 관리 효율을 높이고, 주소지 외의 장소에서도 투표를 가능하게 해 선거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특히 전자투표를 이용해 1인 2표제 등 다양한 투표와 2개 이상의 동시 선거도 가능하게 돼 국가의 선거관리 행정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룩한 IT강국 코리아, 디지털 코리아의 명성은 그동안 지지부진하게 진행돼온 디지털TV 전환, 방송통신 규제정책의 통합 지연 과정들로 인해 지금은 많이 퇴색돼 버렸다. 정부 정책과 정치권의 불협화음이 IT에 관한 우리나라 국민과 시장의 놀라운 능력의 뒷다리를 잡는 것이다. 다시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 보유국이라는 평판에 걸맞게 전자선거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최강의 IT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IT 활용도는 떨어진다는 그간의 국가적 불명예를 이제는 떨쳐버려야 할 시점이다. 이용경 국회의원(창조한국당) ykl6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