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무역기술장벽(TBT:Technical Barriers to Trade)’이라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등장했다. TBT는 자유로운 상품 교역에 장벽이 되는 각국의 서로 다른 기술 규정·표준·인증절차 등을 말하는데,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올해 새롭게 적용된 TBT가 무려 1300개로 지난해(1030개)보다 3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 규제를 비롯해 통관절차·원산지 규정 같은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통상의 무역장벽에 비해 TBT는 기술적 내용이 주가 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기 더 힘들다. 기업도 마찰이 생겼을 때 전통적인 무역장벽에 비해 더욱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특히 일반무역장벽은 세계무역기구(WTO)가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지만 TBT는 현실적으로 무역장벽으로 분류되지 않아 국제기구의 특별한 통제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신흥국은 물론이고 미국 등의 선진국도 소비자 안전과 환경보호 같은 표면적 이유를 내세우며 TBT를 자국 산업의 보호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월 ‘소비제품 안전개선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11월부터 제조 또는 생산된 12세 이하 어린이용 제품에 제3자 적합성 인증을 의무화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모든 수입 제품에 수출국 정부가 인정한 기관에서 발행한 적합성인증서(CoC)를 첨부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 역시 새해 5월 1일부터 외국 IT 기업을 대상으로 컴퓨터 보안 기술 공개를 요구할 방침이어서 미국 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에는 e메일 저장, 백업 파일 관리, 파일 복구, 사내 정보 처리 같은 보안 기술은 물론이고 주요 정보에 대한 암호화 및 해킹 방지 기술까지 포함돼 중국 보안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기업과 정부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탓에 이런 기술적 무역 마찰이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게 됐다. 세계 경제 침체 여파로 각국이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를 ‘현안’이 됐다. 더구나 TBT라 할 수 있는 유럽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 위반 시 우리 기업의 유럽 수출은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내수의 두 배인 66%나 되는데 가뜩이나 힘들 것으로 보이는 새해 수출 전선에 또 하나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정부 차원의 철저하고도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한시가 급하다.
다행히 정부는 그동안 부처별로 분산됐던 TBT 업무를 하나로 단일화해 중앙사무국을 개설하는 등 발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17일 열린 워크숍에서는 향후 3년간 30억원을 투입해 TBT에 대한 종합포털시스템을 확충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해당 업체와 단체에 즉시 통보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유럽연합(EU) 같은 주요국의 법령·제도·표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고 하니 우리 수출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새해 세계경제는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 확실시된다. 이는 앞으로 TBT 분쟁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음을 뜻한다. 정부는 TBT로 인해 행여 우리 수출 기업이 피해 보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