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는 전기자동차의 해였다. 전기자동차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7년 10월 유가가 고공행진을 시작할 무렵이다. 80달러 미만에서 맴돌던 유가가 불과 한 달 사이에 100달러대를 돌파하면서 각국은 전기자동차 도입을 앞다퉈 선언했다.
지난해 1월, 이스라엘 정부를 필두로 해서 덴마크, 포르투갈이 전기자동차 도입을 선언한 이후, 세계 각국은 전기자동차 도입 대열에 속속 참여했다. 일본은 우체국에서 사용하는 2만대가 넘는 차량을 모두 전기자동차로 바꾸겠다는 정책을 발표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영국은 전기자동차를 통해 쇠락해온 자국의 산업을 중흥시킴과 동시에 산업혁명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스페인도 이에 질세라 2014년까지 무려 100만대의 전기자동차를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자동차 업체들도 이 같은 시류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닛산자동차가 향후에는 오로지 전기자동차만 생산하겠다는 선언을 하자 미쓰비시는 2010년부터 판매하기로 한 전기자동차의 출시를 앞당겨 내년에 발매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질세라 GM은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컨셉트카 수준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인 ‘볼트’를 서둘러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세계가 전기자동차의 주도권 확보에 한참 몰입하던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안에 우리나라를 세계 4대 그린카 강국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부시행정부의 정책에 맞춰 수소연료전지차를 향한 외길을 걷겠다는 의외의 선언이었다. 하지만 수소연료전지차에 기반을 둔 그린카 정책은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 자동차 빅3 업체가 발표한 선언에 의해 급속히 퇴색하고 말았다. GM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인 볼트에 올인을 선언한 이후, 계속 눈치만 살펴오던 크라이슬러와 포드마저도 수소연료전지차에 대한 투자를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양사 모두 기존의 내연기관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전기자동차 혹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임을 고백한 것이다.
급기야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거액을 투자한 중국의 BYD는 최근 한 번 충전으로 100㎞를 달릴 수 있으며 가격은 2만2000달러에 불과한 주행거리 확장형 전기자동차(E-REV)인 F3DM을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우리 정부와 주요 자동차 업체는 여전히 전기자동차를 백안시하고 있다. 정부 부처는 현실성이 없는 수소연료전지차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으며 자동차 업체는 시장상황도 불투명하고 배터리 기술이 미흡하다는 이유를 들어 전기자동차 개발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서 고장이 날 것도 별로 없는데다 평균수명도 길어서 돈이 안 되는 사업이라는 판단이 있을 것이다. 또 기존 생산라인을 바꾸는 데 소요될 비용 등에 이르는 갖가지 이유 때문에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인 난제 때문에 자동차 선진국조차 포기선언을 한 수소연료전지차. 그 난제에 조 단위의 겁(?) 없는 투자를 결정하고 세계 시장 흐름을 굳이 외면하는 우리 정부.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연구과제들로 자사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기존의 업체들. 이 세 개의 연결고리가 깨어지지 않고,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명실상부한 친환경차량 정책이 도입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그린카는 단지 허명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춘건 클린카클린시티 대표 cgwon5@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