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자립.
무미건조하게 들리는 이 네 글자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해방 이후 혼란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세계사에 등장한 이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기술 자립 하나에 매달려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원도 자본도 없고 근대화의 기반도 취약한 최악의 상황에서 멀찌감치 앞서 달리고 있는 서구 열강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술 자립, 오로지 한길뿐이었다.
원자력 기술 자립을 위한 원자력 연구개발 역사에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초대 정부는 1957년 방사선과 원자력 관련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 연구용 원자로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먹고살 끼니 걱정도 해결하지 못한 나라가, 당시로는 손으로 꼽을 만큼 몇몇 나라만 관심을 가지던 최첨단 학문 원자력을 기웃거린다니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기술로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선배 과학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굴하지 않고 세계 각국에 입찰 초대장을 보냈고, 숙고 끝에 미국의 TRIGA-Mark Ⅱ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1958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58달러. TRIGA-Mark Ⅱ는 그 1만배가 넘는 70만달러의 고가였다. 35만달러는 정부 예산으로 조달했지만, 나머지 35만달러는 미국 정부에서 무상원조를 받아야 했다.
선진국의 기술을 열심히 따라 배우던 원자력계는 1960년대 말부터 원자력 발전 도입을 추진, 1978년 고리 원전 1호기 가동을 시작으로 원자력 발전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고리와 월성, 영광, 울진 등에 잇따라 짓기 시작한 원자력 발전소는 대부분 핵심 부품을 미국과 캐나다 회사가 공급한 ‘수입 반제품’이나 다름없었다. 기술 종속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원자력계는 짐을 싸들고 해외로 나섰다. 공동설계 계약으로 독일 회사에 파견된 우리 연구원들이 밤새도록 연구실 문을 나서지 않고 몰두하자, 독일 측이 일과 시간이 끝났다고 문을 걸어 잠근 일은 기술 자립 과정에서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난관의 하나에 불과했다.
우리 원자력계는 1996년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인 핵증기공급계통(NSSS)을 독자 설계하고 한국 독자 모델인 한국표준형원전(KSNP)을 완성했다. 1998년 완성된 울진 3·4호기에 처음 적용된 KSNP는 현재 우리나라 전체 20기 원전 가운데 8기를 차지하고 있는 OPR1000의 다른 이름이자, 신고리 3·4호기부터 적용될 차세대 경수로 APR1400의 모태다. 국내 원전에 사용되는 연간 1000억원이 넘는 핵연료를 전량 국산화하고, 세계 10위권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의 자력으로 만들었다.
원자력 연구개발을 앞장서 이끈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올해 정부 출연 과학기술 연구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올 한 해는 원자로 하나로 전기도 생산하고 바닷물을 마실 물로 바꿀 수 있는 중소형 원자로 SMART 기술 개발을 마무리 짓고, 네덜란드가 국제 입찰로 발주한 대형 연구용 원자로 입찰에 도전하는 등 우리 기술을 세계 시장에 내놓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원자력의 수출 산업화는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노력에 힘을 보태고 원자력 기술 자립의 완성을 향한 방점이 될 것이다.
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장 msyang1@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