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포럼]컴퓨터그래픽 스타기업

[콘텐츠포럼]컴퓨터그래픽 스타기업

 미국발 금융위기로 지난 한 해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쁜 소식도 많았다. 특히 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 세계 최고로 우뚝 서며 ‘국민 요정’으로 거듭난 김연아와 메달 불모지라 여겨졌던 수영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마린보이’ 박태환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 이들이 국민의 성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는 것이 힘들어 ‘자부심’을 가지기 어려울 때 ‘자긍심’ 혹은 한국인이라는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컴퓨터그래픽(CG)업계 또한 생존 자체가 힘든 국내 시장 환경과 해외에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상황이라 그들의 성공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최근 영화산업에서 CG는 순제작비 대비 30% 이상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을 비롯한 각종 문화산업과 일반 제조업까지 그 활용도가 확대돼 큰 파급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또 국내 CG기업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수준급의 기술을 구현하며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

 그러나 CG기업이 처한 현실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해외시장은 고사하고 전년도 대비 영화제작 편수가 50% 축소되는 등 국내에서도 일거리 자체를 수주하기가 힘든 상황이며, 결국 대부분의 기업은 존폐위기에서 대폭적인 인원축소를 고민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올해 쏟아지는 전국의 관련학과 졸업생과 적체된 취업준비생을 고려하면 이의 산업적 어려움은 ‘존재감‘ 자체를 상실할 정도다. 안타깝게도 이런 어려움을 단기간에 타개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가 뜻을 모아 다양한 방안을 세우고 노력을 강구한다면 불가능한 일 또한 아닐 것이다. 뉴질랜드·캐나다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어 CG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해 급성장한 해외사례는 많다. 국내에서도 정부 중심의 정책보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실질적인 정책을 통해 CG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새로운 영화 CG트렌드를 구축한 할리우드의 ‘신시티(2005,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300(2006, 감독 잭 슈나이더)’은 캐나다 하이브리드(Hybrid) 등이 해당 프로젝트의 이른바 ‘스타 수주사’가 되면서 캐나다 관련 업계를 먹여 살리는 효과를 도모한 일이 있다. 나아가서, 이 경우는 디지털 액터, 디지털 군중 등의 다양한 CG부터 물, 불 등의 유체 관련 연구개발 기술까지 캐나다의 CG산업 역량 자체를 상승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에 다시 국내 CG업계의 주먹구구식 출혈경쟁이 아닌 국내외 시장의 수요와 트렌드에 적합한 CG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한 적극적인 해외진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사례 창출은 단일 기업 성공 이상으로 산업적 견인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스타 프로젝트’ 수주와 ‘스타기업’을 창출하는 것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은 한 기업 혹은 산업 자체의 ‘고사 위기’ 속에서 수동적인 서바이벌 전략만이 능사가 아니다. 더욱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해외 시장공략을 통해 ‘산업적 존재감’을 확인해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김연아와 박태환이 무거운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었듯이 CG업계도 해외에서 인정받는 기업이 나와 할리우드 제작사의 대접을 받는 행복한 미래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인호 매크로그래프 사장 leeinho@macrograp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