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의 실물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우리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들 어려워한다. 기쁜 마음으로 맞아야 할 신년도 우울하게 보냈다.
몇 년 전 어느 전자회사 고위 임원들과 우리나라의 신수종산업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여러 번의 성장 계기는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위기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하거나, 후발인 처지에서 새로운 변화에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계기를 잡았다는 것이다.
97년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우리 기업들의 체질이 개선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경제침체가 지금부터 잘만 한다면 우리의 SW 산업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우리나라는 통신인프라를 구축하는 데까지는 매우 신속히 투자했지만 그 이후 콘텐츠와 서비스 구축과정에서 지난 10년간 정체 상태에 빠져 있었다. 초고속망 구축은 앞서 갔지만 인터넷 활용은 생산적이지 못했고, 무선단말기는 전 국민이 소유했지만 업무용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통신인프라 중심의 IT정책 아래 SW의 가치와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SW산업에 저해가 되는 정책도 자주 시행됐다. 대형 소비자인 정부 부처와 대규모 제조업의 SW 구매 관행은 SW 패키지 산업과 임베디드 SW 산업을 각각 말살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들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긴급히 고용창출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생겼다. 뉴딜사업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행히도 여러 정부 부처와 전문가들이 IT·SW산업의 고용창출 능력, 그것도 양질의 고용 창출 능력을 인지해 디지털 뉴딜 사업에 호의적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수립 중인 디지털 뉴딜은 각 부처 차원에서 중구난방으로 쏟아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디지털 뉴딜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이 추진돼야 한다.
첫째로 뉴딜사업은 국가적 과제 해결이나 국민의 편익을 위한 대규모 사업이어야 한다. 즉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선별해 시행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들과 소통이 쉽고 IT·SW 투자가 타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사업을 찾아보자.
둘째로 이번 뉴딜사업은 대학과 대학원 졸업생 등 고급 인력이 수혜 대상이 돼야 한다. 위기극복 후에 이들이 IT·SW 융합전문가로 첨단제조업, 문화콘텐츠, 지식서비스, 바이오신약, u시티 등의 첨단산업을 이끌어야 한다.
셋째는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사업이어야 한다. 정부에서 시장을 제공하되 시장 기능을 살려서 경쟁이 촉진되는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이라고 정부가 SW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등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넷째는 뉴딜사업을 거쳐 신기술 개발과 기술창업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뉴딜사업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이 신기술 개발을 활용해 전문적 기술을 갖춘 기업으로 특화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뉴딜에 걸맞은 대규모 예산 확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듯, 아무리 좋은 정책도 예산이 없으면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IT·SW 뉴딜이 당장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미래 성장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공세적인 투자에 나서야 할 때다.
김진형 KAIST 전산학과/소프트웨어대학원 교수 jki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