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인사] 승진폭 최소화…`군살` 확 뺐다

삼성이 임원 승진 폭을 최소화하면서 조직 전체를 크게 슬림화했다. 매년 큰 폭의 승진자를 냈던 삼성전자는 인사 규모가 적었던 지난해보다 임원 승진이 훨씬 적었다. 계열사 전체로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삼성은 앞으로 경제 위기 국면을 감안해 엄격한 승진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혀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초급 임원인 상무급 규모를 크게 줄여 승진에서 누락하거나 승진 대상자였던 임직원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상무’가 너무 많다=삼성에서 상무가 말 그대로 ‘별’로 떠올랐다. 삼성은 이번 인사에서 초급 임원인 상무의 비중을 크게 줄였다. 삼성은 19일 전체 계열사를 통틀어 부사장 17명, 전무 73명, 상무 157명 등 247명의 임원이 승진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23명보다 24명 많은 규모다. 부사장 승진자는 지난해 8명보다 9명이, 전무 승진자는 지난해 52명보다 21명이 늘어 고위 임원 승진 폭이 상당히 컸다. 그러나 상무 승진자는 지난해 163명보다 오히려 6명 줄었다. 삼성 임원 승진자는 2007년·2006년에 각각 472명·452명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상무보가 상무 직급으로 통합돼 명목상 임원 승진 수는 2007년부터 200여명이 줄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승진자가 지난해 117명에서 22%가 줄어든 91명 수준이었다. 삼성 측은 퇴직 임원은 예년 수준이라며 수치 언급을 피했지만 10∼20% 안팎인 것으로 보인다.

◇성과를 보여라=철저한 실적 위주 인사가 그대로 재현됐다. ‘삼성인상’ 수상자가 모두 승진해 ‘성과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삼성의 전통적인 인사 원칙이 그대로 지켜졌다. 전무로 승진한 박원규 삼성코닝정밀유리 상무는 용해 불량을 개선함으로써 경쟁사 대비 원가 경쟁력의 절대우위를 확보했으며 상무로 승진한 이상훈 삼성전자 수석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ToC’ 신공법을 개발해 LCD TV 경쟁력을 높였다. 상무로 승진한 이창하 삼성코닝정밀유리 부장도 8세대 TFT LCD 양산을 위한 신개념 성형 도입으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최기형 삼성물산 부장은 국내 최초로 선진국 기업을 제치고 LNG 지분에 참여해 안정적 수익기반을 만들었다.

◇현장으로 가자=삼성은 사장단 인사에 이어 임원에서도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특히 기술·마케팅·영업 일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참신한 인물을 대거 발탁했다. 삼성 측은 “이번 승진 인사의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현장근무 경험이었다”며 “연구개발(R&D), 기술, 마케팅 등 현장을 강화해 이곳에서 발빠르게 누빌 수 있는 젊고 참신한 새 얼굴을 대거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과 기술직 승진자가 많았으며 해외 마케팅 부문에서 신임 임원이 많이 나왔다. 신임 임원 157명 중 해외 영업 담당자는 22명으로 14%를 차지해 2007년 9%에 비해 상당히 늘었다. 이는 삼성전자를 포함해 올해 주력 기업의 운명이 수출을 포함한 해외 시장에 달려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주요 계열사 조직 개편에서도 해외 마케팅 조직을 강화하는 방안이 속속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 관심을 모았던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지 않았다. 삼성 측은 부사장 승진을 위한 전무 재직 연한을 채우지 못했다고 답변했지만 이번 인사가 ‘이재용 체제’를 굳히기 위한 포석이라는 식의 해석이 나오는 데 따른 부담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