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규모를 대폭 축소한 삼성전자와 달리 이른바 전자소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늘어난 곳도 있었다. 특히 신생 관계사로 등장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옛 비서실 출신 실세들이 대거 승진 배치되면서, 출발부터 차세대 주력 계열사의 입지를 예약했다. 한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삼성코닝정밀유리도 전자소그룹 내에서 과거와는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후자’들의 약진=“삼성 내에서는 ‘전자’외엔 ‘후자’만 있다”는 말이 있다. 그룹 내부에서 삼성전자의 외형은 물론이고 구조본 해체 후 입김 또한 견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삼성SDI는 지난해 부사장 1명, 전무 2명, 상무 2명의 승진자를 각각 배출했으나 올해는 전무 3명, 상무 4명으로 전체 규모에서는 지난해보다 많았다. 삼성전기도 지난해 5명의 상무 승진자만 있었지만 올해는 전무 2명, 상무 4명을 각각 승진 발령해 작년보다 늘었다.
특히 관심 가는 곳은 신설 합작사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삼성코닝정밀유리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에는 그룹 내 신규 사업 해결사로 알려진 강호문 사장이 전격 발령난 데 이어 이번에 4명의 전무와 5명의 상무를 대거 승진 배치했다. 부사장급 보직이 최소 1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출발부터 웬만한 전자소그룹 내 관계사와 맞먹는 규모다. 더욱이 전무 승진자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은 옛 비서실 출신의 유의진 전무와 송백규 전무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본격적으로 키워 향후 이재용 시대를 대비해 신규 사업을 착실히 키우려는 뜻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삼성코닝정밀유리도 창사 15년 만에 주요 관계사의 지위를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LCD 유리기판이라는 단순한 사업구조에도 불구하고 박원규 전무가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 전무로 발탁됐다.
◇오너 일가 가족 서열 파괴?=전자소그룹 계열사에 근무 중인 이건희 회장 가족들의 승진도 ‘서열’을 따지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둘째 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 첫째 사위인 임우재 삼성전기 상무가 이번 승진에서 누락된 대신, 둘째 사위이자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김재열 제일모직 상무는 만 40세에 전무 승진이라는 파격적인 발탁 사례가 됐다. 삼성 측은 “승진 연한을 고려한 것일 뿐,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