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 480㎞에 이르는 거대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한다.’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천문연구원(원장 박석재)이 지난 2001년부터 추진해온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사업 이야기다.
KVN은 서울(연세대), 울산(울산대), 제주(탐라대)의 3곳에 세워진 지름 21m 크기의 전파망원경을 통합해 운영하는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 시스템이다. VLBI는 원거리에 떨어져 있는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을 네트워크화시켜, 가상적인 하나의 거대한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서울·울산·제주에 삼각형으로 설치된 3개의 망원경을 연결하면 남한 크기와 맞먹는 지름 480㎞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파 대역의 정보까지 관측할 수 있고, 한반도 지각운동을 수천㎞ 떨어진 거리에서 수㎜의 오차로 측정할 수 있다. 천문연구원은 서울에서 한라산 꼭대기에 있는 쌀알 하나까지 볼 수 있는 정도라고 설명한다.
KVN은 지금까지 지구대기의 영향으로 시도되지 못했던 높은 주파수대역인 밀리미터파 대역을 세계 최초로 관측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4채널(22·43·86·129 ㎓ 대역)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목표로 하고 있어 본격적인 기능을 시작하게 되면 세계 최고의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KVN 사업 핵심인 3개의 전파망원경 설치가 완료됐고, 지난해 12월 울산에서 준공식을 개최한 바 있다. 올해부터는 각 전파망원경 관측과 이를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하며, 이르면 10월경 3곳의 망원경 관측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KVN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예정이다.
준공식에 앞서 지난해 11월 KVN연세전파천문대는 일본 국립천문대 전파망원경 관측망인 ‘VERA’와 국제공동 VLBI 실험을 수행했다. 두 천문대는 약 1250㎞ 거리를 두고 있어 KVN 단독 관측에 비해 약 2.5배 높은 성능의 관측성과를 얻을 수 있다. 실험결과 최초 시험관측에서 관측을 시도한 4개 천체 모두 간섭무늬를 검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천문연구원은 선진국에서 수행된 실험결과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천문연은 오는 2011년까지 총 150억원을 투자해 VLBI 연구의 동아시아 허브로서 역할을 수행할 ‘동아시아 VLBI 연구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정현수 천문연 KVN 그룹장은 “지난해까지 시설 구축이 끝났고, 올해부터는 3개 망원경을 실제 연결하고 운용하게 된다”며 “VLBI 망원경으로 본격적인 기능을 하는 시점은 올해 10월에서 11월께이며, 실제 KVN 개통식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 그룹장은 “오는 3월에 동아시아 VLBI 워크숍을 개최하며, 동아시아 VLBI 연구센터 구축도 시작된다”면서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VLBI 연구의 주도권을 쥐고 연구방향 등을 이끌어 가겠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