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자원부국` 꿈꾸던 공무원의 죽음

[데스크라인] `자원부국` 꿈꾸던 공무원의 죽음

 “정말이야? 설마, 그럴 수가! 엊그제까지 통화했는데.”

 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날 돌연한 비보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둔기로 뒷머리를 맞은 것처럼 한동안 ‘띵’했다. 오보기를 바랐지만 이미 인터넷에 오른 기사는 현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곁을 떠났지만 그의 사망 소식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날 저녁, 빈소를 찾아 국화 한 송이를 바치면서 먹먹한 가슴 한구석에 아리도록 시린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공보관 시절 그는 느닷없이 “소주나 한잔하자”는 ‘번개’를 종종 쳤다. 기자란 직업이 유독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약속이 없는 날이 거의 없다.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갑작스럽게 저녁 술자리를 제의해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의 강요(?)에 넘어가 쾌히 승락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 중요한 약속 아니면 미루고 ‘정부미’하고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안 잖아요.” 눈웃음 뒤에 비치는 간절함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겉보기에는 사람 좋은 인상이지만 업무로 들어가면 그는 다르다. 당시 산업자원부에 몇 남지 않은 동력자원부 출신 에너지전문가다. 이야기 중에 꼭 한 번은 ‘에너지 강국’이 들어갔고, 술 한잔 들어가면 ‘자원 부국’을 늘 입에 올렸다. ‘에너지를 입에 달고 사는 게 사라진 부처에 대한 향수가 아니냐’는 독한 질문에도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농담 아닌 농담으로 받았다.

 그의 달란트는 확실히 ‘에너지 자원’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 모두 에너지를 떠올린다. 행시 25회로 지식경제부 전신인 산업자원부와 동력자원부 시절 에너지정책과, 가스산업과, 원자력정책과 등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 3월부터 에너지자원실장을 맡아 사상 유례없는 고유가 기조 속에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무난히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굳이 동력자원부 출신이라는 성분을 따지지 않더라도 에너지에 대한 인식부터 걱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공은 확실히 에너지다.

 결국 소망하던 에너지정책 최고위 책임자에 올라 지휘봉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는 세상과 이별했다. ‘원자력발전소 수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만 남겨 놓은 채 뒷일을 남은 사람들에게 넘겨줬다. 한창 일할 나이,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쉽게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전력질주를 위해 운동화 끈을 채 조여매지도 않았는데….

술자리에서 다짐하던 에너지강국의 실현은 하늘에서 돌봐주어야 할 그의 염원으로 남겨두었다. 그 염원으로 9일의 짧은 재임기간이 결코 짧지 않음을 그는 보여주고 떠났다.

 ‘영혼이 없다’는 공무원도 있겠지만, 대부분 공무원은 늦은 밤에도 청사의 불을 밝힌다. 영혼 없이 늦도록 불을 밝히고 일을 할 수는 없다. 걸핏하면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방패로 나설 선봉들이다. ‘죽도록 일하다 죽으면 영광이겠다’는 한 공무원의 바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애절한가 보다. ‘에너지 전쟁’시대 몇 남지 않은 용사의 죽음이 더욱 애통하게 느껴진다.

 고 안철식 차관의 영전에 다시 한번 애석한 마음의 꽃을 바친다.

이경우 신성장산업부장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