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녹색성장과 그린스탠더드

[ET단상]녹색성장과 그린스탠더드

 정부는 지난달 15일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본법’ 제정의 가장 큰 특징은 통일성이다. 정부 여러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에너지, 기후변화 및 지속가능 정책을 법률로 통합해 관련법보다 상위법으로 제정하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입법 예고한 기본법 중에 눈에 띄는 조항이 있다. 국민의 ‘녹색생산·소비문화의 확산’을 위해 제품 생산에서 사용,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라이프 사이클)을 평가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가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제품에 표시하는 제도적 기틀을 정부가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제품에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 표시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녹색성장 의지를 선언한 며칠 뒤 적도 인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는 기후변화 분야 국제표준화 회의(ISO/TC 207/SC7)가 개최됐다. 회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탄소발자국에 대한 통일된 국제 표준(ISO 14067)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미 일부 국가별로 탄소발자국 표시 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제각각이다. 국가별로 경험한 시행착오를 보완해 기업의 사회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제표준 제정 작업이 한창인 것이다.

 국제적으로 탄소발자국의 선두주자는 영국의 ‘카본트러스트’사다. 이 분야의 저명한 권위자인 그레이엄 신든 박사는 말레이시아 회의에서 “카본트러스트 역시 과거에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6개의 검증기관을 지정, 1년간 시범제도를 운영한 바 있다”고 발표하며 탄소발자국의 국제표준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품이나 제도가 표준으로 제정되면 소비자에게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최근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디지털 도어록을 예로 들어보자. 도어록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문에 구멍을 내야 하는데 제조사마다 제품에 맞는 구멍의 간격과 크기가 서로 달라 타사 제품으로 바꿀 때 문에 철판을 덧대고 다시 구멍을 내야만 한다. 하지만 디지털 도어록에 관한 KS표준이 제정됨에 따라 소비자는 불필요한 비용과 수고를 덜 수 있다.

 표준 제정은 소비자의 편리성을 증진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전체적인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국제 표준의 경우 그 영향력은 훨씬 막강하다. 얼마 전 고선명 광디스크인 HD DVD 기술을 앞세워 차세대 디지털 미디어 국제 표준을 선점하려던 도시바가 블루레이 기술에 밀려 막대한 손실을 입으며 시장 철수를 결정한 대목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한다.

 탄소발자국 표시제도는 기업의 그린 생산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녹색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체성을 유지하되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규정한 그린스탠더드에 기반을 두고 세계 각국에서 통용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우리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제표준이 제정될 수 있다면 국가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환경의 중요성을 심어주는 전환점이 되고, 국제표준을 선도함으로써 녹색 경제시대에 세계 선도국가로 국가 브랜드가 상승되기를 기대한다.

 최갑홍 한국표준협회장 kaphong@k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