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에 전국 학교의 졸업앨범 시장에서 제일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마침 그날 열렸던 한국의 소프트웨어(SW)발전 간담회에서 나온 여러 가지 건의와 토의 내용을 이야기했다. 그 친구 왈, “너희는 그래도 정부에서 뭘 들어주고 회의도 하고 그러는구나. 우리 쪽은 애로사항 등 간담회는 별로 없고 정부하고 접촉은 국세청 세금조사가 다야.”
친구가 하는 말을 들으니, ‘다들 3D라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 분야에는 희망이 있구나. 그나마 정부와 업계 간에 이번 간담회처럼 빈번한 접촉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국내 소프트웨어(SW)산업도 변하긴 많이 변했네 하는 감회도 스쳤다. 10년 전, 그때만 해도 하드웨어(HW)를 도입하면 SW를 공짜로 제공받았다. 이젠 SW를 도입하면 때에 따라 HW를 거의 공짜로 제공하는 일도 있다. SW 분야가 짧은 사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됐다. 뿌듯함도 느꼈다. 그동안 한국은 인터넷보급률에서 세계 첫 번째를 달리면서 인터넷강국임을 만천하에 각인시켰다. 첨단 유수 외국기업이 제품성과 시장성을 미리 점쳐볼 수 있는 테스트 베드로도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씁쓸한 생각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한국은 미국에는 30년, 일본에는 10년 정도 뒤지고 있다는 말을 막연히 들어왔다. 이제는 어렴풋이 그 말이 기술이나 개인기 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각, 즉 마인드도 포함된다는 걸 확연히 느낀다.
생각, 마인드….
이제는 SW를 바라보는 생각이 좀 바뀌어야만 할 때다. 그래야 한국이 SW 강국,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을 듯하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SW의 가치에 대해 조금씩 생각을 달리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첫째, 공급자들은 자기가 공급하는 SW 제품을 제대로 잘 만들고 사후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또 타 업종에 비해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우리끼리의 과당경쟁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즉, 제품, 홍보, 영업에서는 경쟁하더라도 절대 가격으로 경쟁하면 안 된다.
둘째, 사용자는 비용만을 줄이려는 노력이 자기 조직에 오히려 해가 됨을 알아야 한다. 즉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몇 년 뒤 성수대교처럼 무너지는 사고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달리 해볼 일은 SW는 타 분야와 다르게 뛰어난 한두 사람이 100명, 200명 심지어 몇 만명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필요한 개발을 위해 파견 근무케 하고 사람 수와 달 수(Man/Month)로 비용을 계산하는 한국이 과연 SW 강국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물론 기존 숱한 선배들이 이렇게 일처리를 해왔고 프로세스화돼 있으니, 본인도 예전처럼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생각을 탈피해야 하며 실제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인재다.
“이번 일 제일 잘되게 하기 위해 적정 비용은 서로 섭섭지 않게 조율합시다. 개발인력은 우리 쪽에 상주시키든 귀사 내에서 하든 관계없습니다. 중간 중간 결과물과 최종 결과물은 절대적으로 깐깐하게 챙길 것입니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회사는 분명 뛰어날 수밖에 없는 회사일 것이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 khhkhh@kcub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