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이슈@월드-`엔고 환원`으로 얼어붙은 소비심리 녹이는 일본

[글로벌리포트]이슈@월드-`엔고 환원`으로 얼어붙은 소비심리 녹이는 일본

일본 경제가 어렵다고 다들 난리다. TV에서는 경기 불황으로 파리 목숨으로 내몰린 파견 근로자에 대한 뉴스를 연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구조조정의 의미가 언제부터 인력감축이라는 말과 동일시됐는지 모르겠지만, 몇 백명도 아니고 몇 천명 단위로 해고 소식을 전하는 대기업도 제법 된다.

 일본의 이러한 경기불황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엔고’임은 다들 주지하고 있다. 다른 국가의 통화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가치가 부풀려진 일본 엔화. 1990년대 중반 한 차례 ‘버블경제’라는 이름으로 엔화 상승을 이미 겪은 일본. 그때의 내성이 지금까지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소리가 들린다.

 ◇깊어지는 불황의 골=경기가 악화되자 일본 소비자는 지갑을 꽁꽁 닫기 시작했다.

 이러한 징후는 백화점의 매출 급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 10월 일본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8% 감소했는데, 이는 부가세를 도입한 해를 제외하고 지난 1994년 이후 최대의 매출 감소폭이다. 또 일본체인점협회에 따르면 2008년 10월의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발 경기 악화 그리고 이에 따른 소비감소를 막고자 일본 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나눠주기로 한 의결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국민 1인당 1만2000엔을, 특히 18세 이하 청소년과 65세 이상 고령자에게는 2만엔을 주는, 총액 2조엔의 현금을 시장에 풀어 소비로 이끌겠다는 전무후무한 정책이다.

 소매업체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소매업체인 ‘이토요카도’나 ‘다이에’에서는 ‘엔고환원(円高還元, 엔다카칸겐)’ 세일을 펼치고 있다. 달러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 바로 ‘엔고환원’이다.

 ◇‘엔고환원’, 얼어붙은 소비심리 녹인다=‘엔고환원’ 세일로 식료품처럼 실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주요 식품 매장에 나가보면 미국산 로스 100g에 100엔, 태국산 블랙 타이거 새우 1마리 100엔, 뉴질랜드산 키위 1개 50엔 등 평소 구입할 때보다 10∼20% 인하된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요일 한정이나 날짜 한정처럼 때에 따라서는 30∼4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또 판매되는 제품도 식료품에 한정되지 않고 전자제품, 가구, 의류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엔고환원’ 열기가 더 뜨겁다. ‘엔고환원’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현재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다양한 웹사이트 목록이 나온다.

 일본의 유명 가구 업체 ‘오쓰카’, 골프 관련 용품 판매점 ‘제이퍼스’, 심지어 현악기와 관련 음반을 전문으로 파는 ‘스토란도’에서도 ‘엔고환원’이라는 배너를 달고 영업하고 있다.

 ◇한국행 비행기 연일 만원 사례=이 중에서도 엔고환원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단연 여행 관련 업계일 것 같다.

 언론에서는 경기가 악화됐다고 울상을 짓지만, 10년 만에 찾아온 엔고 특수를 그냥 넘길 여행업계가 아니다. 엔고로 발생한 이익에 대해 유류 할증료를 감해준다거나, 혹은 상품가격에 반영해 정상가격에서 20∼30% 할인한 가격에 상품을 팔고 있다.

 특히 한국 관련 여행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2007년 상반기에 비해 현재 엔화 가치가 한국 원화에 비해 무려 50% 정도 절상된 상황이다. 일본인이 2007년 상반기에 비해 절반 가격으로 한국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한국의 문화, 관습, 먹거리 등을 좋아하는 일본 여행객에게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임이 분명하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는 듯 일본을 출발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연일 만원이라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외국산 먹거리 불안감도 상존=그렇다고 엔고환원 세일이 모두 매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광우병 파동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미국산 소, 농약성분이 검출된 중국산 냉동교자, 그리고 중국산 뱀장어를 일본 국내산으로 속여 판 도매업자의 구속 등으로 외국산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일본 자국산 식재료만을 선호하는 부류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런 이들에게 엔고환원으로 가격이 내려간 미국산 로스구이나 중국에서 생산된 냉동식품이 먹힐 리 만무하다.

 지난 1993∼1995년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에도 자주 등장했던 ‘엔고환원’. 소비자에게는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소매상 쪽에서는 감소된 매출을 만회할 기회임이 분명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환율의 급속한 상승에 따른 이익분을 소비자와 공유하는 데 비해, 한국 기업은 비슷한 조건 아래서 과연 어떤 마케팅을 펼쳤는지 궁금하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원고환원’이라는 단어가 들릴 그때를 기대해본다.

 도쿄(일본)=김동운 태터앤미디어 일본 블로거(doggul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