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디지털시대, 아날로그 감성의 경쟁력

[월요논단]디지털시대, 아날로그 감성의 경쟁력

 영화 ‘워낭소리’가 화제다. 특별히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광고나 홍보가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새로운 기록으로 주목받는다. 지난 16일에는 관객점유율 22.4%로 아카데미 최다 부문 후보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제치고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해 뉴스가 되더니 20일에는 드디어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독립다큐멘터리의 이런 ‘성공’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물론이고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든 것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이다. 제작비 1억여원의 영화가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다면 워낭소리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워낭소리의 성공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기술 발달로 매체융합이 가속되고 채널이 늘어나면서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관객의 마음을 얻는 성공요인을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기 때문이다.

 워낭소리는 국내외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박스 오피스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어 작품성과 경제성이라는 좋은 콘텐츠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정작 워낭소리에는 흔히 생각하는 상업적 성공요소가 없다. 눈요기가 될 만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재미도 없고, 뛰어난 연기력도 없다. 노인과 늙은 소의 걸음걸이만큼이나 느리고 투박한 시골의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보는 내내 가슴이 찡하다.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감동, 이것이 관객 100만명을 동원한 힘이다. 더 빨리, 남을 앞질러, 무엇이든 성취하는 것이 사는 목표가 된 디지털 시대의 한국인이 투박하고 느린,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아날로그적 감성에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영화의 성공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진정한 경쟁력은 감동에서 나온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한쪽에선 방송사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좀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막장’ 드라마를 늘리고 교양프로그램을 축소한다고 해서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한 일간지는 ‘따스함이 사라지는 TV’라는 표현으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텔레비전에서 인간의 모습이 사라지고, 자극과 눈요기 거리만 남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것이 방송의 경쟁력 제고고 산업화의 모습이라면 실망스럽다. 좀 덜 고단하게 농약을 쓰자는 할머니의 성화에 “소 죽어”라고 퉁명하게 내뱉는 영화 속 할아버지의 외마디 대답이 귀에 쟁쟁하다. 농약보다 덜 나쁘다 할 수 없는 ‘막장’ 콘텐츠를 안방에 뿌리는 우리의 방송은 과연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얻는 것인지 모두가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 만든 좋은 영화의 기분 좋은 성공을 보면서 이미 광고의 고전이 된 ‘small is beautiful’이란 카피가 생각난다. 통상적 기준에서 보면 불리한 조건을 두루 갖춘 저예산 독립 다큐멘터리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콘텐츠 산업의 또 다른 모습이자 매력이라는 점도 상기시켜 준다. 워낭소리의 성공을 계기로 작은, 그러나 아름다운 콘텐츠가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경자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kaylee@kc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