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신생벤처, 해외서 살 길 찾는다

 미국 밖 해외 신흥 시장으로 비즈니스 역량을 집중하는 실리콘밸리 신생 벤처기업들이 늘고 있다.

 23일(현지시각) 실리콘밸리닷컴에 따르면 해외 시장으로 판로를 돌리는 밸리내 업체들은 줄잡아 20여개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전체 매출의 70∼80%를 해외에서 거두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일부 업체는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목표로 설립돼 해당 지역에 최적화된 제품 개발과 영업망 구축을 꾀하기도 한다.

 아날로그 TV 방송 수신용 휴대폰 칩을 생산 중인 텔레전트시스템스는 올해 디지털TV 전환을 앞둔 미국 시장은 아예 마케팅 타깃에서 배제했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마케팅 전략이 세워졌지만 영어 버전은 없다. 오로지 아시아·중동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등이 목표다.

 인터넷 프로토콜 및 통신기술 전문업체 UT스타콤은 미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휴대폰의 공급선을 중국 등 해외로 돌려 지난해 약 2억4000만달러어치를 내다파는 등 쏠쏠한 재미를 봤다. 10억달러에 달하는 연매출 가운데 적어도 75%가 미국 밖에서 나온다.

 그레이그 사무엘 UT스타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실리콘밸리는 전통적으로 무시해온 해외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역량과 혁신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특히)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경색된 시장에 마케팅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덜 영향을 받는 다른 세계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무선 기술업체 루커스와이어리스 역시 최근까지 80%의 매출을 해외에서 거뒀다. 이 업체는 케이블망이 성숙되지 못한 해외 시장에서 무선 네트워크와 IPTV 등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관련 사업 기회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 요구와 영업망 확충을 위해 해당 지역에 밝은 공동 창업자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레전드실리콘은 중국인과 공동 창업으로 설립돼 중국 HDTV 칩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린 양 레전드실리콘 CTO는 “기술과 경험은 이 곳(실리콘밸리)에 있지만 시장은 태평양 수천마일 건너에 있다”며 “중국 표준에 최적화된 HDTV 칩과 차량 TV에 이어 1∼2년 내에는 휴대폰용 제품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거대한 기회의 장으로 TV 시장은 현재 4억대에 달하고 해마다 10%가 새 제품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같은 비즈니스 전략의 배경을 밝혔다.

 윌리엄 밀러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제 해외 신흥 시장이 ‘생산자’ 시장에서 ‘소비’ 시장으로 바뀌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고 있다”며 “대부분 밸리내 업체가 여전히 미국을 세계 최대 기술 시장이자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보고 있지만 최근 해외에서 먼저 판로를 찾는 신생 기술벤처들이 ‘매우 급격히’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