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150조원에 이른다. 코스닥에 상장된 1000개가 넘는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 약 52조원의 3배에 달하며, 우리나라 최고기업인 삼성전자 시가총액과 비교해도 2배가 훨씬 넘는 수준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금융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기술금융은 기업의 담보력이나 재무상태 등 현재의 상환능력이 아닌 미래의 ‘기술’을 매개로 이뤄진다. 기술금융으로 성공한 기업은 일반 중소기업과 비교해 기술력과 성장성이 뛰어나며 창업자 개인이 얻는 사적(私的) 수익률도 매우 크다. 고용확대나 산업구조 고도화, 성장동력 제공 등 국가 경제적인 파급효과는 사적 수익률이 높은 개별기업의 성과를 훨씬 웃돌 정도로 크다. 따라서 기술금융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 그만큼 우리 경제의 미래는 밝다.
기술금융의 성공은 기업이 가진 기술성과 미래 성장가능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를 합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정교한 평가시스템을 마련하고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과거 벤처캐피털업체들이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은 것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2조원 넘게 발행했던 프라이머리 CBO의 실패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은 적극적인 기술금융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 미래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는 한 정부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민간 금융기관이 기술금융을 확대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무성과나 담보 중심의 기존 평가방식과 달리 기술의 가치나 경영자의 능력, 미래의 성장 가능성 등 무형자산을 평가하는 시스템의 개발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평가대상인 기술의 수준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기술 패러다임이 변해 비교대상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평가시스템 개발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거의 평가결과를 DB화해 반영하고, 평가요소의 내용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보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산업과 기술, 시장에 대한 경험과 안목을 지닌 우수한 평가인력도 필요하다.
수년 전부터 중소기업진흥공단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이 이러한 평가시스템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중소기업청이 정책자금 공급에서 기술성과 미래 사업성 같은 비재무적 평가의 비중을 크게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술금융 확대를 바라는 기업들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기술금융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대표적인 시장실패 영역이라는 점이다. 기술금융은 성공의 불확실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시장기능만으로는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세계 각국은 미국의 SBIR 프로그램,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 싱가포르의 TIF(Technopreneurship Investment Fund)와 같이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미국의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정책자금을 확대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산업 인프라 구축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정부는 기술금융에 대한 정책자금의 배분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기업의 기술력이나 미래가치를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도용환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 yhdo@st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