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오픈마켓에 `객주`의 지혜를](https://img.etnews.com/photonews/0903/090303054633_1179934455_b.jpg)
조선시대 객주가 있었다.
전국 각지의 상품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주선하며 그에 걸맞은 구전을 챙기는 중간상인이다. 좁게는 행상, 넓게는 객지상인에 대한 모든 행위의 주선인이라는 뜻을 지닌 객상주인이다. 이들은 돈을 버는 상인이지만 콩 한 알도 나눠 먹으며 백성들의 일상을 살폈다.
객주는 고객에게 돈을 받고 물건을 팔고, 나중에 물품대금을 납품업자들에게 지급했다. 상업적인 의미로 외상매출금이다. 당시의 돈은 언어와 같았다. 물론 외상거래였지만 공급자인 납품업체뿐만 아니라 물건을 구입하는 최종소비자에게까지 도움이 됐다. 간혹 빗나간 상술로 인해 돈을 떼이기도 했지만 대행수(지도자)의 상도와 상철학으로 시장이 유지됐고 질서가 잡혔다.
오늘날 이들을 대신하는 것이 온오프라인 할인점이다. 제품을 알선해 주고 판매수수료를 받아 운영된다. 특히 초고속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는 오픈마켓이 올해로 10년을 맞으며 시장 역량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그런 오픈마켓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물론 속고 속이지 않는 좋은 거래가 더 많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물을 흐리고 있다. 상품거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만큼 탈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2006년 4월부터 공정위는 1회 결제금이 10만원 이상일 경우 결제대금예치제를 적용, 의무화하고 있다. 오픈마켓에서 시행하고 있는 에스크로서비스다. 불신을 믿음으로 돌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이 제도가 허점을 보이고 있다.
맥을 짚어 보자. 온라인 구매는 ‘고객구매→확인→물품발송→고객 구매결정→완료’ 5단계로 이뤄진다. 오픈마켓은 소비자가 물건 주문 후 대금을 입금하면 배송이 정상적으로 완료되는 일정기간 동안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물건을 받지 못했거나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첫 번째 문제는 고객이 물건을 받으면 ‘고객구매결정’을 해줘야 하는데 대부분의 구매자가 이를 무시한다. 오픈마켓은 상품 발송 후 구매결정을 유도하는 e메일을 보내지만 이 또한 묵묵부답이다. 오픈마켓은 중개상인으로 계속 구매결정이 안 눌러진다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물품 배달은 완료됐는데 구매자의 ‘정성 부족’으로 입금되지 않는다면 판매자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규제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에스크로 시행령에 자동정산일을 3일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배송 시간에 쫓겨 수령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택배시스템도 문제다. 일부 택배사는 주소지에 물품을 놓고 배송완료 단추를 누르기도 한다. 배송하는 동안에 파손되는 현상은 두 번째 문제다. 여기에 하루에 수십만건 이뤄지는 거래에 만성이 된 오픈마켓의 안일함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구매자에게 구매결정을 해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끼어 구전을 받는 객주지만 침통만 들었지 맥은 못 짚고 갈지자로 비틀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덤에 흥정까지 이뤄지는 저잣거리 오픈마켓이지만 고객신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옛말에 ‘한 말의 곡식이라도 찧어서 나누어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라도 옷을 지어 같이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나라 안팎이 어려운 시절이다. 시장이 확대되고 위기를 넘기는 힘은 늘 콩 한 알도 나눠 먹던 객주의 지혜였다. 조선시대 객주가 자꾸 오버랩되는 이유다.
김동석 생활산업부 차장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