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유해국이 집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윤태호라는 사람이 허투루 만화를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진실성을 느꼈습니다.”
지난 2일 경기도 분당의 작업실에서 만난 신문수 화백(70)은 후배 윤태호 작가의 ‘이끼’에 대한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신 화백이 ‘이끼’를 접한 것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가장 아끼고, 발전성 있다고 여기는 후배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 연재되는 것을 보면서였다. “도대체 이 녀석이 요즘 뭘 하나” 하는 생각에 접속해서 우연히 봤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끼’는 한국 만화에서 드문 스릴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신 화백은 이끼를 읽으며 “조금만 더 젊었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윤태호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알고 있으면서 자기 의도대로 독자를 몰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렁이같이 빠르지는 않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는, 흡입하는 작가적 역량을 발견했습니다.”
신 화백이 ‘이끼’에서 또 하나 높이 사는 부분은 윤태호 작가의 연출력.
그는 “만화 전반에 풍기는 으스스한 전경은 어떤 사진작가라고도 찍을 수 없을 정도”며 “영화로 만든다 해도, 과연 만화의 느낌만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극찬했다.
적은 컷 수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는 명랑만화를 주로 그리던 신 화백에게 인물의 표정 변화로 몇 컷씩을 그리는 웹툰의 연재 방식이 때로는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만화는 이런 식으로 연출돼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구식생각 아니겠냐”며 “영화 보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게 차이점”이라고 이해했다.
신문수 화백이 윤태호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한국만화가협회장을 지낼 당시. 만화산업과 관련한 모임이나 행사에서 참석해 말하는 모습을 보고 ‘만화에 대한 주관이 또렷하고 똘똘한 친구’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춘향별곡’ ‘로망스’ ‘이끼’로 이어지는 윤태호 작가의 변화와 발전을 보면서 “극 만화 부문에서는 허영만 다음에 윤태호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각각의 작품마다 장르가 다르고 개성이 넘치기 때문이다.
허영만 화백의 문하생 출신임에도 스승의 냄새가 나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신 화백이 윤태호 작가의 가능성을 높이 사는 이유다.
그는 “세월이 지나면 스승을 뛰어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태호 작가 역시 데뷔한 지 20년이 다 된 중견작가지만 신 화백에게는 한참 후배다. 그는 후배 작가가 혹시나 경제적으로 어려울까봐 일거리가 오면 추천해주기도 했는데 ‘이끼’와 다른 연재로 바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착각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순수한 독자로서 신문수 화백은 ‘이끼’가 전개될 방향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섣불리 누가 뭘 노리고 살인했다고 판단하기 힘들 것 같아요. 더 깊은 사연이 숨어 있을 법한데,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