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포럼]김정일 3기 체제 출범과 남북경협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요즘 남북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북한은 잇따른 대남강경 조치들을 쏟아놓고 있다. 광명성 2호 발사 준비를 본격화한다고 밝힌 이후 민간 항공기 안전까지 위협하고 나섰다. 남북 간에 마지막 통로인 군 통신을 차단해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제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김정일 3기 체제의 닻을 올렸다.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강력한 통치 형태를 예고하고 있다. 4월쯤 최고인민회의 첫 전체회의를 열어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국방위원장에 추대함으로써 김정일 친정체제를 더욱 공고화할 것이다. 이때 김정일 위원장의 건재함을 외부에 공개해 강력한 리더로서의 입지도 굳혀 나갈 것이다. 후계구도를 어떤 형태로든 거론하면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할지도 주목된다.

 남쪽과는 군사적 긴장 상태를 점차 고조시키면서 대납압박을 가하는 반면에 미국과는 대화를 시도하면서 북한 나름대로의 실리 챙기기에 몰두할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통미봉남’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면 김정일 3기 체제 이후 남북경협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한마디로 더욱더 암울해질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3기 체제를 보면 군부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구조다. 10·4 선언을 주도했던 노동당 통일전선부 대남 라인과 민경협 핵심 관계자가 물러나고 군부 측근들이 건재한 게 특징이다. 이들은 대남경협보다는 체제강화와 권력유지에 더 집착할 속셈이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북한은 개성공단뿐만 아니라 대남경협도 전면 차단하는 순서로 이어갈 것이다. 대남 경제협력기구인 민경련이 내각에서 통일전선부 산하로 옮겨갔고, 간부들도 경제 일꾼이 아닌 당과 보위부에서 나온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북한이 노동, 환경, 임금, 근로자 관리 등의 이유로 개성공단 입주업체에 압박을 가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서해상의 군사충돌 과정을 거친 후 개성공단은 일부 기업의 퇴출을 시작으로 6월께에 문을 완전히 닫는다는 시나리오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위기에 처한 남쪽 경제에 더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북한은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은 남북경협 중단에 대비해 제3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해오고 있다. 중국 관광객의 방북이 부쩍 늘어났고 외국 투자가들이 평양을 누비고 있다. 북한은 대남경협 물꼬를 중국 등 제3국으로 돌린 것 같다. 특히 수교 60돌을 기념하기 위한 ‘조·중 친선의 해’를 맞아 북중 경제협력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신의주를 비롯한 나진선봉 재개발 움직임도 일고 있다. 평양에서 30여명으로 구성된 투자조사단을 이들 지역에 파견해 한 달째 법적 검토와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몇 년이 지나면 중국이 북한 경제를 다 장악하고 남쪽에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경협사업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북한의 최대 화두는 경제회복이다. 경제회생을 위해선 남북경협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선 최우선적으로 민간교류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경협은 한계를 가질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민간경협이 다시 부활해 남북관계를 풀어나가야 한다. 늦어도 봄이 지나기 전에 금강산 및 개성관광부터 재개해 신뢰를 쌓고 당국 간 직접적인 대화 채널을 복원해야 한다. 개성공단은 초심으로 돌아가 활성화돼야 한다.

 남북한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으려면 신남북경협 종합 로드맵 수립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과감한 투자와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남북경협 비용에 대한 부담은 민족 경제 발전을 위한 투자로 간주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남북경협 형태도 이제는 선진화돼야 한다. 시장기능을 중심으로 국제적 기준이 작용하는 사업 환경으로 전환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을 넘어 대륙으로 가는 남북경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chobh21@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