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전자제품의 신뢰도 평가 및 안전인증 등 산업기술 시험인증 시장이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정부출연 인증기관인 산업기술시험원(KTL)의 진주혁신도시 이전이 기정 사실화된데다 핵심 업무인 시험인증 업무도 이전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수도권 소재 기업들이 서울 소재 외국계 인증기업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6일 관련기관에 따르면 현재 KTL의 이전은 국토해양부의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소관으로 넘어가 구로동 KTL 사옥 일부를 매각하고 고가의 시험인증 장비를 비롯한 70∼80%의 직원들이 진주로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방안의 균형발전특별위원회 상정이 지난해 12월 한차례 보류됐다 이번 달에 다시 상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KTL의 장비를 포함한 대부분 인증업무 직원들이 이전할 경우 제품을 시험인증받으려는 수도권 소재 기업으로선 인증비용·편의성 등의 요인으로 수도권에 소재하고 있는 SGS코리아·UL코리아 등 외국계 산업기술 전문 인증기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투자해서 만든 출연기관을 정부가 다시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수많은 수도권 소재 기업들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진주 소재 KTL에 인증 업무를 맡길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KTL의 고객 중 70%가 넘는 고객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KTL의 경우 외국계 인증기업보다 20% 정도 비용이 저렴하지만 인지도 있는 외국계기업 인증을 받으면 수출 측면에서 유리하다”며 “그래도 불경기에 국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법정 수수료가 싼 KTL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만일 진주로 이전하게 되면 추가비용까지 써가며 지방에서 인증받는 것보단 인지도 높은 외국계 기업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계 시험인증 기관은 스위스 계열의 SGS코리아와 미국계의 UL코리아, 네덜란드의 Nemko 등이 서울에 근거를 두고 활발한 영업을 진행중이다. 업계 추산으로 외국 인증기업들의 연간 매출 합계는 지난해 KTL 매출 약 800억원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KTL의 시험인증장비와 인력이 진주로 이전할 경우 국내 산업기술 인증 시장의 버팀목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KTL의 한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른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겠지만 KTL 이용고객의 71%가 수도권 소재 기업이라는 점에서 시험인증 장비와 인력까지 진주로 옮기는 현재의 논의는 현실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시험인증 기관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 중소기업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외국계 인증기업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국내 시험인증 시장 주도권이 고스란히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지식경제부 측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12월에도 균형발전특위에 상정되는 것을 보류했으며 이번달에도 특위에 상정하는 것을 보류해 줄 것을 국토해양부에 요청했다”며 “특위에 안건이 상정되면 방안이 확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전에 충분히 조율하고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수기자 mim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