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란 용어가 남북관계에서 북한을 무조건 도와주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누가 언제 북한지원을 ‘퍼주기’라는 용어로 표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용어 정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995년 15만톤의 북한 지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민간·정부가 북한에 무상 지원한 금액은 약 2조1000억원이 넘는다. 이 금액은 연간 약 1660억원을 지원한 셈이며 4500만명의 국민이 1인당 매년 약 3700원을 지원한 셈이 된다. 사실 통일을 준비하는 일에 모든 국민이 매년 한두 끼 식사비를 절약해 내자고 한다면 거절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여하튼 이런 지원 덕분에 그동안 수십만명의 사람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그리움과 고통 속에 살아왔던 이산가족이 가족을 만났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극도의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북한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긴 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은 ‘나눔’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겠다’ ‘북한이 필요한 인도적 지원은 적극 협력하겠다’ ‘평화통일의 꿈은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신뢰를 쌓아가는 중요한 요소는 대화지만 신뢰는 대화를 통해서만 쌓이는 것이 아니다. 우선 나눔을 통해 쌓여가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즉, 신뢰는 조건 없는 나눔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 동포들에게 식량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북한은 아직 자본주의나 국제화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없다. 이 때문에 우리와 같이 대등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것을 기대하고 서둘러서는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일을 추진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와 그간의 경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지난 2월 평양을 방문해 평양과학기술대학을 둘러보았다. 산학연 협력이 가능한 지식산업복합단지도 문을 열 준비가 다 돼 있었다. 33만평의 용지에 본관, 기숙사, 연구소, 식당, 복지관, 산업센터, 88개의 방을 갖춘 게스트하우스 등 18개 동의 건물이 완공됐고 24시간 난방과 전력도 안정적으로 공급된다고 한다. 평양과학기술대학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힘을 합하는 곳이다. 북한의 우수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연구시켜 새로운 기술과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게 한다는 점에서 남북이 함께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이제는 고부가가치의 공동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남북경협처럼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 같은 임가공 위주의 사업이 아니라 남북이 같이 일하고 수익을 나눌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북한의 저렴한 하급 노동력만을 사용하기 위해 남북경협을 한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으로서는 1인당 월 70∼80달러, 100만명이 일을 한다고 해야 겨우 7000만달러를 벌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일에 북한이 큰 비중을 두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독점적 인력공급권이 있는 북한은 여러 가지 명분을 달아 인건비를 계속 올리게 될 것이고 우리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우수한 인력을 활용해 남북이 함께 일하고 수익을 나눌 수 있는 남북협력 고부가가치 창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도 경쟁력이 생기고 북한도 적극적인 고급 인재 발굴과 지원을 하게 될 것이다.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 ikea21@paran.com